“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2004년 7월 열한명의 여성을 성폭력한 후 살해해 암매장한 유영철이 범행 동기를 묻는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당시 이 장면은 각 방송사의 메인뉴스로 안방에 여과없이 보도됐다. 여성단체에서는 유영철이 살인을 하고도 마치 보도방 여성들이 정조관념이 없어 자신이 처단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공분했다.

나아가 유영철의 입을 빌어서 여성들에게 소위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여성들이 밤길을 안전하게 거닐 권리를 주장하는 밤길되찾기 달빛시위를 시작했었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 ‘정조’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인권 침해가 있어왔다. 정조를 목숨보다 소중히 지켜야 한다며 여성들을 짓눌렸던 조선시대의 정조 이데올로기는 차치하고라도, 현대에 와서도 법적으로 성폭력을 규제하는 형법 제32장의 제목 자체가 ‘정조에 관한 죄’였다. 사전적으로 정조란 성적 관계의 순결을 지키는 일로, 결혼 전 순결을 지키는 것과 결혼 후 배우자 이외의 자와 성적 교섭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며 주로 여성들에게 강요해온 가치다(네이버 지식백과).

실제로 1955년에는 70여명의 여성들을 농락해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됐던 박인수는 그들 중 누구와도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었고, 70명 중 단지 1명만 처녀였노라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1심 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며 무죄를, 2심 법원은 “댄스홀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내놓은 정조가 아니다”며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제32장의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다. 일부 법학자들과 여성단체의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의 수정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법조문에서 ‘정조에 관한 죄’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1997년에는 성폭력 피해를 입고 피해자가 자살한 사건을 보도하던 기자가 뉴스 끝맺음을 “정조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이 여대생의 죽음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라고 해서 당시 수백 명의 PC통신 이용자들과 여성단체의 항의와 질타를 받았다.

결국 해당 기자는 사내 징계를 받았고 방송사는 공식 사과했다. 1999년에는 하교길 여고생을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트럭에 태워 강간한 남성에게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감형 이유는 초범이고,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양가에서 둘의 결혼에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가해자 처벌 대신에 피해 여고생에게 자신의 강간범과 평생을 살라는 ‘처형’을 내린 그 학생의 가족, 우리 법원과 사회는 ‘정조’의 이름으로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시간이 흘러 우리는 2016년을 맞았다. 법적으로 성폭력은 더 이상 정조에 관한 죄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일상에서 살아숨쉬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학부모를 포함한 섬마을 주민들의 여교사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절대 고소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가능했던 범죄다.

그러나 해당 여교사는 즉시 고소했고 증거도 제출해 범행을 전면 부인하는 가해자들을 검거할 수 있게 했으며, 현재 피고인들에게는 중형이 구형된 상태다. 가해자들은 아직도 ‘정조에 관한 죄’라는 그늘에 숨고 싶어 하지만 피해자들의 의식과 태도는 변화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

올 6월 이후에는 유명 연예인의 성폭력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중 한 사건은 서로 전혀 모르는 4명의 여성들이 거의 비슷한 피해를 주장하며 고소를 했는데 경찰은 모두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나아가 검찰은 첫 번째 고소인을 무고죄로 구속기소했고, 10월 13일에 이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다. 피해 여성들이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보호할만한 가치가 없는 피해자’라는 공식으로 취급되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기대하며, 우리 여성들은 이 재판 과정을 주목하고 감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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