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순 예비역 준장은 “통일이 이뤄질 때를 대비해 장기적 안목으로 군 내 여성 인력을 길러야 한다. 여군 출신들이 북한 여군들의 사회 정착에 기여할 역할이 많다”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송명순 예비역 준장은 “통일이 이뤄질 때를 대비해 장기적 안목으로 군 내 여성 인력을 길러야 한다. 여군 출신들이 북한 여군들의 사회 정착에 기여할 역할이 많다”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군 1만명 시대 간부 비율은 5.5%뿐 “투스타 여성 장성 나와야”

여성의 소프트 리더십 군에 필요…국방력 향상 위해 여군 키워야

“통일이 이뤄질 때를 대비해 장기적 안목으로 여성 인력을 길러야 합니다. 북한은 여군 점유율이 12%쯤 돼요. 통일이 되면 북한 여군 인력을 누가 흡수할까요. 민간인보다 군 내 여성 인력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요. 북한 여군들의 사회 정착에 이들이 기여할 역할이 많아요. 우리 여군을 확대해 나가면 군이 결코 손해 보지 않을 것입니다.”

‘국군의 날’(10월 1일)을 앞두고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전투병과 첫 여성장군인 송명순(58) 예비역 준장은 전역한 지 4년 가까이 됐지만 마음은 여전히 군에 두고 온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현재 대구가톨릭대 초빙교수로 후학을 기르고 있다. 아담한 체구에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군 현안을 짚는 모습에서 소프트 리더십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최초 여성장군’이란 타이틀이 주는 위압갑은 느껴지지 않았다. 송 교수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유능제강’”이라며 웃었다.

전투병과 첫 여성장군 비결은 ‘유능제강’ 리더십

“‘유연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 30년 동안 군 생활하면서 나를 견인한 말이에요. 참모를 하든 지휘관을 하든 부하들을 데리고 있을 때 유능제강이 통하더군요. 여성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유능제강 리더십이 군에서 통했고 장군까지 될 수 있었어요. 예전과 다르게 군대도 소프트한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한 그는 여군에 흔치 않던 작전통이었다. 1981년 여군 29기로 임관해 지상군페스티벌 종합사령실 대변인과 육군본부 여군담당관, 육군 제2훈련소 연대장을 거쳐 한미연합사령부 민군작전처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보직을 두루 경험했다.

예전에는 육군본부 내 남자 사병과 여군 부사관 간에는 차별이 심했다. 남자 사병들에게는 정신교육을 없애고 PC방까지 만들어 주면서 여군은 계급이 더 높은데도 취침 때까지 정신교육에 점호를 시켰다. 사병은 대학을 다니다온 우수한 인재가 많고 여군 부사관은 전문대나 고등학교 출신이 많다는 편견도 작용했다.

그는 육본 여군대대장 시절 여군대대 해체를 건의해 관철시켰고 잡다한 행정 업무를 하던 여군을 야전 현장으로 이끌어냈다. 2011년 1월 1일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맡으면서 ‘별’을 달았다.

전투병과 첫 여성장군이니 여군 1만명 시대에 누구보다 할 말이 많다. 아직도 여군 간부 비율은 우리 군에서 5.5%에 불과하다. 지난 6월 기준 여군은 총 1만263명(육군 6915명, 해군 1264명, 공군 1694명, 해병대 390명 등)이다. 계급별로는 장성이 2명(준장), 영관 823명, 위관 3924명, 준사관 24명, 부사관이 5490명 등이다. 그러나 여성 간부 5.5%, 장교(준사관 이상) 7.4%, 부사관 4.5%로 여전히 극소수다.

“1981년 군에 임관할 때 간호는 장교 900명, 여군은 장교 100명에 부사관이 800명가량 됐어요. 35년 전 간호와 일반 병과를 합해 1800명이었는데 지금 1만명이니 흐른 시간에 비해 그렇게 발전했다고 보이진 않아요.”

송 교수는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가다보니 1만명 시대가 열린 것일뿐, 아직은 여군 진출 영역이 제한돼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버지가 군인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군인을 꿈꾸지는 않았다. 군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 1980년 대학 졸업반 때다. 대구 중구의 맥화랑에서 친구를 만나고 나오는데 옆 건물 담벼락 게시판에 ‘여군 장교 모집’ 공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화랑 옆에 있는 게 대구지방병무청이란 걸 그때 알게 됐다. 호기심에 들어갔더니 여군 부사관이 반갑게 맞았다. 통제된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망설이다 그냥 일어서려는데 담당자가 애절한 표정으로 그를 붙잡아 지원 신청서를 쓰고 나왔다.

병무청 담당자는 “경쟁률이 10대1이다. 우수한 인재가 이렇게 많이 지원한 건 처음인데 붙는다는 보장도 없다.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일단 시험이나 한번 보라”고 권했다. 그 말이 그의 자존심에 불을 지폈다고 한다.

그가 임관했을 때만 해도 여군이 된다는 것은 수녀나 여승이 된다는 의미였다. 사회적으로 여군을 매도하는 문화가 있었다. 여군 선배들은 ‘무조건 바른 생활을 하라’ ‘절대로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엄격히 조언했고 심지어 버스도 못 타게 했다. 대중에게 쉽게 노출되면 안 되고 품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여군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여군 1만명 시대가 됐지만 10%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여군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직 구성원이 돼야죠. 그렇다고 남성화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사실 군에서 보면 1만명이 적은 숫자가 아니에요. 예전에는 고급사령부에만 여군이 보였지만 지금은 대대를 내려가도 여군이 보여요. 개개인이 다양해지다보니 초심을 잃을 때도 많습니다. 남자들처럼 군대를 가야 해서 온 것도 아니고 자신이 선택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잊어버려요. 안일해지기 쉽지요. 사실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지금도 전쟁을 기다리면서 준비하는 조직이 된 것 아닌가요. 조직이 원하는 구성원이 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송명순 예비역 준장은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가다보니 1만명 시대가 열린 것일뿐 아직은 여군 진출 영역이 제한돼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송명순 예비역 준장은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가다보니 1만명 시대가 열린 것일뿐 아직은 여군 진출 영역이 제한돼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군, 현대전서 더 빛 발한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현대전에서 여군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보병뿐 아니라 수송, 정보, 항공, 헌병 등 모든 것이 다 융합돼야만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에 여군이 더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여성 리더십이 왜 군에 필요한가요.

“여성들에게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또 여성의 강점은 일단 사람을 움직이는 힘과 연결됐을 때 훨씬 효과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징병제에선 간부들이 총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지휘를 합니다. 전쟁에 나서는 사람들은 병사들입니다. 간부는 리더 역할을 하는 거죠. 병사들을 아우르고 훈련시키고 ‘내가 왜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하나’ ‘유사시 이 총을 들고 뛰쳐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여성에게 더욱 많아요.”

-아직 여군에 ‘투스타’가 나오지 않았어요.

“군대 바깥 조직에 있는 여성들이 겪는 유리천장과 여군들이 겪는 유리천장은 기본적으로 동일해요. 전방 근무를 안한 여성 장군을 정상 진급시킬 수 없다는 분위기부터 바꿔야 합니다. 핵심 보직, 필수 보직에 여군을 보내지 않다가 이제와서 경험 부족을 논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여긴 여군이 갈 수 없는 남군 자리’라는 유리천장을 만들지 말고 여군의 능력을 활용해야죠. 특히 여성 장군을 정상 진급시켜 ‘투스타’를 내려는 정책적 결단이 절실해요.”

-송 준장이 전역한 후 전투병과에선 2년 간 여성 장군을 내지 못하다 2014년 김귀옥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며 전투병과 여군으로는 두 번째로 별을 달았습니다.

“창군 이래 단 한 명의 여성도 ‘지휘관의 꽃’으로 통하는 사단장을 맡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에요. 우리 군의 성평등 지수를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이죠. 미국의 육·해·공군에서 모두 여성 4성 장군이 탄생한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알 수 있어요.”

송 교수는 “고집 피우고 욕심 피우겠다면 진급을 못 시켜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임기제 진급을 수용했다. 일단 여성 장군 물꼬를 트는 게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여성 장군을 임기제가 아니라 정상 진급을 시켜야 한다”며 “육·해·공 3군 사관학교와 육군훈련소 보직은 여성 장군이 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사자성어를 들려줬다. 안중근 장군이 남긴 이 말을 가슴에 품고 군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친다’는 의미의 ‘위국헌신 군인본분’은 그뿐 아니라 많은 군인들이 가슴에 담아두는 안 장군의 유훈이다.

 

전투병과 첫 여성장군이 됐을 당시 받은 장군도를 보여주고 있는 송명순 예비역 준장. ⓒ이정실 사진기자
전투병과 첫 여성장군이 됐을 당시 받은 장군도를 보여주고 있는 송명순 예비역 준장. ⓒ이정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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