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 발전에 기여한 여성 업적 기리는 공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 자택, 미국역사기념물로 지정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 자택. 스탠튼은 자신의 집을 “반란의 중심지”로 호명했다. ⓒ박현숙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 자택. 스탠튼은 자신의 집을 “반란의 중심지”로 호명했다. ⓒ박현숙

1969년 세네카 폴즈의 여성과 남성들은 여권투쟁이 시작된 작은 마을에 영원한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물로 ‘미국 여성명예의 전당’이 태어났다.

정부나 기관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주도해 박물관을 만들었고, 뉴욕주가 아닌 전국의 여성을 대상으로 여성의 권리는 물론 미국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여성을 위대한 여성으로 헌액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각각의 판넬에는 위대한 여성들의 사진을 넣고 그 사람들의 업적을 설명하는 글이 쓰여 있다. 식민지 시기부터 현재까지 워낙 많은 여성들을 헌액하다 보니 장소가 비좁아서 1844년 지어진 세네카 방직공장을 수리해서 2017년에 이사를 간다고 한다. 이 전당의 목적은 위대한 여성들의 업적을 기리고 다음세대에게 미래의 여성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민간의 노력에 발맞춰 1980년 국립산림청은 세네카 폴즈와 워터루 지역의 6.83에이커(2만7600제곱미터)에 해당하는 지역을 ‘여성의 권리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4개 지역을 보호지역으로 조성했다. 최초의 여권회의가 진행됐고 반노예제 운동, 정치 집회, 자유로운 연설이 가능한 지역의 안식처인 웨즐리 교회, 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맥클린톡의 집, 헌트의 집과 스탠튼의 집이 이에 해당된다. 맥클린톡의 집과 리처드 헌트의 집은 1980년 유적지로 등재됐고,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의 집은 1965년 이미 미국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방문객센터가 웨즐리 교회 바로 옆에 세워졌다.

방문객센터의 1층 로비에는 5명의 조직자들과 주요 인물들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 등 20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안내데스크에 지도, 방향 안내 관광 일정을 구비하고 있다. 2층에는 여권투쟁과 노예제 폐지운동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일종의 교육장인 셈이다.

방문 당시 2층의 전시장에 “남자와 여자가 진정으로 평등해지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쓰여진 전시장의 판넬 밑에서 젊은 아빠가 어린 딸의 숙제를 도와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나요”라는 게시판에는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그려진 곳에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장난스럽지만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좋아 보였다.

방문객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의 집은 사위인 헨리의 벌이가 안정적이지 못할 것을 우려한 아버지 캐디 판사가 빌려준 집이었는데, 흥미롭게도 캐디 판사는 이후 이 집을 사위인 헨리가 아니라 딸인 엘리자베스에게 상속했다. 집 뒤에는 널찍한 정원이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관행과 달리 딸에게도 옷이 더럽혀질 것을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뛰놀도록 했다.

당시 대부분의 임신한 여성들은 집에 머물며 소외된 삶을 살았다. 이와 달리 스탠튼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자기 집 앞에 깃발을 걸어서 아이의 탄생을 널리 알렸다. 아이들의 양육과 가사로 발이 묶여 있던 그는 여성을 위한 평등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녀가고 연설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개방해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결합하였다.

그런 이유로 스탠튼은 자신의 집을 “반란의 중심지”라고 불렀다. 또 독신이었던 수전 B 앤서니는 스탠튼의 집을 방문해 가족을 돌봐줘 스탠튼이 연설문을 쓰도록 했다. 바로 그 연설문을 들고 앤서니는 여권운동을 위해 여러 곳으로 순회강연을 다녔다. 방문 당시 스탠튼의 집은 많은 가구를 구비하고 있지 않았고 많이 부족한 듯 보였지만 조금씩 복원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세네카 폴즈 관광을 마치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고, 여성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던 이들의 숭고한 삶과 희생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되었다. 아마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권리를 소중하게 행사하고 미래세대에게 유리천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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