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설립된 대안학교 대구 방송통신중학교 청소년반 제1회 졸업식이 열린 2015년 12월 16일 대구 달서구 학교 강당에서 교사와 졸업생이 서로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내 최초로 설립된 대안학교 대구 방송통신중학교 청소년반 제1회 졸업식이 열린 2015년 12월 16일 대구 달서구 학교 강당에서 교사와 졸업생이 서로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해마다 가을이면 학교 실습지에서 배추를 가꾼다. 올해도 8월 중순에 씨를 사다 400여 개의 모종을 만들어 밭에 옮겨 심었다. 배추 농사에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벌레와의 싸움이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고 농약을 멀리했더니 올해는 아무리 잡아도 벌레의 공격이 끝날 줄 모른다.

작고 여린 벌레지만 이놈들이 배추의 속살에 자리를 잡으면 하루도 안 가 새순이 녹아버리다시피 한다. 그렇게 되면 벌레를 잡은 후에도 건강한 새순 대신 기형적인 순이 나오거나 아예 성장이 멈춰 시들어버리기도 한다. 성장점이 상했기 때문이다.

배추를 가꾸면서 나는 수없이 우리 학교에서 보는 아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잘 자라는 배추와 같은 아이들도 있지만, 늘 마음이 쓰이는 것은 성장점이 상한 아이들이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정 해체나 부모의 그릇된 양육 방식이 다수를 이루지만 왕따나 교사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 성폭행 등의 후유증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성장점이 상한 배추는 물이나 거름을 아무리 주어도 기대만큼 자라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늦게나마 깨어나 다시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수는 끝내 배추의 모양을 내지 못한 채 시들고 만다. ‘제발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성장점이 상한 아이들은 배우려는 의욕이 없고 무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싫어한다. 강한 벌이 아니라면 규칙이나 의무도 관심 밖이다. 동물적인 욕구만이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식욕과 쾌락, 성욕, 순간적인 감정의 배설, 상대방의 비하와 공격 등등.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상한 성장점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그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 성장점 세포는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 학교는 징벌과 훈계로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학교에서 마음이 떠난 아이들에게 그러한 처방은 반항심만 키우는 독이 될 뿐이다. 이제는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서 그의 상처를 살피고 혹시라도 남아 있는 성장점 세포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교가 원하는 공부는 못해도 특정 분야에서 나름의 소질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

단, 어떠한 경우에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없애줘야 한다. 그 묘약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 같은 가없는 사랑이다. 학교에 아직 그런 사랑이 남아 있을까? 그래도 대안학교 교사들의 속이 문드러지는 것은 그런 사랑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