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의 물꼬를 활짝 터온 박상률 작가가 모처럼 시집을 출간했다. 제목부터 재미있다. 『국가 공인 미남』. 언젠가 소설가 송기숙과 이문구가 술자리에서 설전을 벌였단다. 송기숙이 먼저 말한다. “미남부터 먼저 한 잔 혀야제. 나는 국가에서 인정한 미남이잖이여!”

사연은 이랬다. 그 옛날 “걸핏하면 글쟁이 얼굴이 지명수배 전단에 오르내리던 때” 송기숙의 지명수배 전단에 “이 자는 호남형으로…”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어 송기숙이 후배 이문구를 타박한다. “문구 자네는 ‘얼핏 보면 미남이나…’ 고렇게 사진 밑에다 꼬랑지 붙여 놨잖이여!”라고. “첫눈엔 미남 같제만 자세히 뜯어 보믄 미남이 아니라는 말 아녀?”

말 잘하기로는 이문구도 뒤지지 않는다. “착 보믄 척! 첫인상이 중요하제, 꼭 찬찬히 뜯어봐야 아남. 그러고 그때 사진은 못 나온 걸루 썼드만. 형님은 순 사진발이었다니께유.” 아픈 시절의 상처를 웃음으로 승화한 두 소설가의 이야기를 박상률 시인이 특유의 입담으로 살려냈다.

여러 시인과 문사들이 등장하지만 『국가 공인 미남』에서 가장 절절한 대목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에서 나온다. ‘개 안부’라는 시에서는 아들 걱정은 뒷전이고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고 입맛이 없어 된장국도 미역국도 먹지 않는다는, 수화기 너머의 어머니 목소리에 서운함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결정적 한 마디. “아무래도 지가 잡어놓은 노루 뼈라도 고아서 멕여야 쓸란갑다.” 시인은 “늙은 어머니. 이녘 안부는 뒷전이고 개 안부만 길게 전한다. 아, 나도 못 먹어 본 노루 뼛국!”이라고 노래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살가운 정이 느껴져 오히려 훈훈하다.

“서울 과낙구 실님이동……. 소리 나는 대로 꼬불꼬불 적힌 아들네 주소”로 시작하는 ‘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에는 아들만 생각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정이, 그런가 하면 그 안에 담긴 정성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목숨으로 바꾼 것들 같아 아들은 마음이 짠하다.

“상자 뚜껑을 열자 양파 한 자루, 감자 몇 알, 마늘 몇 쪽, 제사 떡 몇 덩이, 풋콩 몇 주먹이 들어 있다. 아니, 어머니의 목숨이 들어 있다. 아, 그리고 두 홉짜리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 한 병! 입맛 없을 때 고추장에 밥 비벼 참기름 몇 방울 쳐서라도 끼니 거르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음.” 끝내 아들은 택배 상자를 끌어안고 이렇게 노래하면 울었다. “아들은 어머니 무덤에 엎드려 끝내 울고 말았다.”

다음은 ‘내리사랑’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늙은 어머니 날 볼 적마다 닳아질까 봬 오래 쳐다보기도 아까운, 금쪽같은 내 아들! 어머니한테 나는 그런 아들인데 허구한 날 허튼짓만 하는, 나?” 물가에 내놓은 자식 생각하는 것 마냥, 한평생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시가 아니던가.

박상률 작가의 시집 『국가 공인 미남』을 읽으려거든 먼저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어떤 시에서는 배꼽 잡을 이야기들을 하고, 또 어떤 시에서는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우리가 『국가 공인 미남』을 만나볼 수 있으랴.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