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여성사박물관포럼   

“여성과 언론 기록해야”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씨 장남

앨범과 사진 등 유물 기증

 

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제6차 여성사박물관포럼이 열렸다.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제6차 여성사박물관포럼이 열렸다.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이 부지선정 문제로 지연되는 가운데 ‘여성사박물관 포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와 한국여기자협회는 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제6차 여성사박물관 국회포럼 ‘여성과 언론, 자유와 평등의 횃불을 드높이다’를 개최했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국민의당 조배숙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은 ‘국립여성사 박물관,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대주제 아래 현대사 속 여성 언론인의 역할을 살피고, 박물관에 보관돼야 할 가치에 대해 논의했다.

주제 발표는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가 맡아 ‘사회적 약자의 제자리 찾기에 힘쓴 여기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 교수는 근대 신문이 등장한 이후 최초의 여기자 이각경씨부터 70~80년대 언론 자유 수호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가 해직된 권영자·김창희·김선주·장명수·신연숙·권태선 기자 등을 언급하며 “언론인들은 언론 자유 수호투쟁을 기자협회나 언론사 노동조합을 축으로 해 펼쳐나갔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여성차별정년제 철폐’ ‘여성결혼 퇴직제 관행 고발’ ‘정계 여성할당제 제안’ 등 여기자들의 공동대처로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를 거론하며 “여성의 문제를 끈질기게 고발하는 데 앞장선 신문이 주간지인 여성신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여성신문의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세상보기’는 일간지의 편집방향에도 영향을 미쳐 종래와 다른 관점을 보이는 기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기자는 기사로서 얘기하는 것이다. 여성사박물관 테마전시관에는 당시의 여론형성을 위해 여기자들이 노력한 내용을 진열하거나 설명하면서 많이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며 “여성 언론인들이 사회의 전체적인 여론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걸 알려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달순(왼쪽) 전 수원대 총장이 이원복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와 정현백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공동위원장에게 최은희 여사의 유물을 전달하고 있다.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이달순(왼쪽) 전 수원대 총장이 이원복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와 정현백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공동위원장에게 최은희 여사의 유물을 전달하고 있다.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이어 권태선(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고문)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과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채경옥(매일경제 논설위원) 한국여기자협회 회장이 토론을 벌였다. 권 전 국장은 “여기자들이 긍정적인 역사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라며 “시인으로서도 유명한 노천명처럼 친일기자로 이름을 올린 이도 있고,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사적 영달을 추구한 여기자들도 없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여기자들이 만들어낸 역사의 어떤 부분을 계승하고 어떤 부분을 버려야 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발행인은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당시 지면을 통한 여성운동을 표방했고, 사업목표는 양성평등 실현이었다”며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여성이슈가 여성신문을 통해 보도됐다”고 설명했다. 또 “소수의 여성이 개인의 투쟁을 이어가며 개척한 여성운동 1.0시대는 언어와 언론을 통해 구조적인 틀을 갖추면서 2.0시대를 맞았다”며 “여성신문이 한 일은 결국 여성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고, 여성이 아닌 인간에 관한 문제임을 끊임없이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은 여성운동 3.0시대로 명명할 수 있다. 2.0시대가 여성 중심이었다면 3.0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이 함께 가는 파트너십이 중요해졌다. 여성운동과 언론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며 “여기자들의 역사를 기록할 때 중요한 것은 한 시대의 가부장적인 권력구조를 향해서 언론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저항했는가다. 전시관에 여성신문을 비롯해 여성언론의 노력이 잘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채 회장은 “우리는 역사에 어떤 여성들이 있는지 잘 모르고 지나왔다. 빈틈 사이사이에 채우지 못한 고리가 굉장히 많다”며 “여성사를 복원해서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가지 이유로 역사에서 아예 지워진 사람들이 있는데 공평하게 공과를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며 “여성사, 특히 여성 언론인 발굴이 좀 더 치밀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1904-1984) 여사의 유물을 그의 장남인 이달순 전 수원대 총장이 국립여성사전시관에 기증하는 행사도 이어졌다. 이 전 총장은 추계 최은희 전집 5권과 앨범과 사진, 양철 상자 등을 이원복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와 정현백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공동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최 여사의 양철 상자는 원고료와 방송료를 저축한 은행 통장을 모아뒀던 유품이다. 이 전 총장은 “어머니는 100만원 적금통장 50개가 모이자 5000만원짜리 통장 하나로 만드셨다”며 “당시 입원하고 계신 적십자 병원 입원실로 조선일보 유건호 부사장 등을 초청해 ‘최은희 여기자상으로 잘 써달라’고 당부하며 건네주셨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 용산공원 부지 내에 국립여성사박물관을 세운다는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6월에 확정 짓기로 한 ‘용산공원 기존 건축물 활용 등을 위한 콘텐츠 발굴’이 아직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국립여성사전시관이 문을 연 이후 한국여성사학회를 중심으로 여성사박물관 건립 추진 노력이 이어졌지만,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기본계획 등 후속 조치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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