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학과 교수 3인 좌담회-일본의 스토킹 범죄와 여성 폭력

일본 여성 10% 스토킹 경험

징역 6개월·벌금 50만엔

형량 가볍고 실효성 낮아

강간죄 형량 높이는

형법도 개정 추진

 

(왼쪽 부터) 오카다 아이 준교수, 테지마 아키코 준교수, 미나미노 가요 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왼쪽 부터) 오카다 아이 준교수, 테지마 아키코 준교수, 미나미노 가요 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일본은 여성 10명 중 1명이 스토킹 피해를 경험할 정도로 스토킹 범죄가 늘고 있다(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2014년 ‘남녀간의 폭력조사’). 전·현 애인이 스토커였던 경우는 38.5%로 한국(78.7%)보다 낮은 반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여성이 28.9%에 달한다.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지면서 2000년 5월 스토커 규제법이 제정되고, 가해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5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일본 법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 형량이 적다고 지적했다. 형벌을 더욱 강화해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스토킹 가해자가 더 이상 스토킹을 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갱생 프로그램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토여자대학교 법학과 미나미노 가요(57) 교수와 테지마 아키코(50) 준교수, 오카다 아이(48) 준교수가 마주 앉았다. 일본 여자대학 중 법학과가 설치된 곳은 교토여대가 유일하다. 특히 전체 교수 15명 중 여성 교수가 8명으로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 의원, 교토여자대학교와 함께 ‘스토킹 피해 실태 및 법적 대응’ 주제로 연 한·일 심포지엄 참석 차 방한한 이들은 일본의 스토킹 범죄 현황과 과제, 아베 신조 정권의 여성정책을 분석하고 과제를 짚었다.

 

-일본은 16년 전 스토킹 규제법을 만들고 2013년 개정을 거쳤다. 가해자에게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50만엔의 처벌을 한다. 경범죄로 처벌하는 한국보다 형량이 센 편인데.

-테지마 아키코(이하 아키코): 스토킹 범죄의 무게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 가해자가 유죄라고 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도 많고 징역을 살아도 단기간에 사회로 되돌아온다. 그러면 피해자 입장에선 보복이 두려울 수 밖에 없고,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고 원한만 쌓여서 스토킹 행위가 에스컬레이터되는 경우가 많다.

 

-에스컬레이터된다는 말은 범죄가 진화한다는 말인가?

-아키코: 그렇다. 스토킹으로 시작해 나중에 폭력과 살인같은 흉악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형량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가해자에게 형사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에는 사회 환경도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으므로 가해자의 내면만이 아니라 외적 요인 분석도 더 이뤄져야 한다. 현재 민간단체 중심으로 이뤄지는 가해자 갱생 프로그램을 정부가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왼쪽 부터) 오카다 아이 준교수, 테지마 아키코 준교수, 미나미노 가요 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왼쪽 부터) 오카다 아이 준교수, 테지마 아키코 준교수, 미나미노 가요 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최근 일본 여당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토킹을 규제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데?

-미나미노 가요(이하 가요): 일본에서 처음 법 제정 당시 많이 사용하던 통신수단만 법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0년에는 휴대전화 메시지로 스토킹이 이뤄졌지만, 이후에 이메일 스토킹이 많아지면서 2013년 법 개정 때엔 이메일을 규제 대상에 넣었다. 최근엔 SNS 스토킹 범죄가 발생하면서 또 다시 스토킹 수단 규제를 확장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법 해석이 협소하게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법을 넓게 해석해 처벌하면 되지만 현재 경찰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지 않다. 또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스토킹 규제법 제정 때부터 경찰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왔고, 사법부의 관여가 적었는데, 재판소(법원)의 관여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여성 10.1%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실제 신고율은 어떤가?

-아이 오카다(이하 아이): 스토킹은 피해자가 자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해서 집착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잘못해서, 믿음을 주지 못해서 애인이 스토킹하는 것으로 자책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스토킹 범죄도 성폭력 범죄처럼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체제 하에서 여성 경제활동 활성화에 나서고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 당선 등 여성 대표성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성이 빛나는 사회 만들기’라는 이름의 여성정책도 추진되고 있는데, 전문가들과 일반 여성들의 평가는.

-가요: 아베 정권이 대외적으로는 여성정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응은 각기 다르다. 정부가 도쿄에서 대대적으로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향한 국제 심포지엄(WAW! Tokyo 2014)’을 열었는데, 이때 쏟아 부은 예산을 실제 돈이 필요한 싱글맘 등을 위한 썼다면 더 유효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아베 총리가 여성 지위 향상에 나서겠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정책을 통한 성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폭력 근절을 국정과제로 삼고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민 불안감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최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등 여성 살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여성 폭력, 살인 등에 정부와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테지마: 최근 일본 정부는 형법 중 성범죄와 관련해 개정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 얼마전에 법무성(법무부) 내부 검토회를 거친 중간보고서가 발표됐다. 여기에는 강간죄 처벌 형량을 기존의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강화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13~18세 청소년을 감호하는 관계에선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인과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안도 논의 중이다. 현재는 성인과 13~18세 청소년 사이에 동의가 이뤄진 상황에서의 성행위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은 없나.

-가요: 10년 전부터 성폭력 금지법 제정 운동을 추진해온 시민단체에는 여성단체 뿐 아니라 성소수자 단체와 남성 피해자 단체 등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법무성 검토회의 중간보고서에서도 강간죄 피해자 중 남성도 증가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남성들도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큰 반발은 보이지 않는다.

통역=박수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위촉연구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