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선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특임교수

5년간 42개국 215명 수료

정부의 관심·지원 늘어나

국가별 EGEP 마련되길

 

이명선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특임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명선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특임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GEP는 진화해가는 여성주의 실천의 장이자 실험의 현장이었어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여성 활동가들은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서로의 문제를 이해했고, 여성 억압의 공통성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했어요. 저 역시 EGEP 운영팀원이자 교수인 동시에 교육 참가자로서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 글로벌 임파워먼트 프로그램(EGEP)을 이끄는 이명선(53·사진)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특임교수는 지난 5년간 이끌어온 EGEP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EGEP는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비정부 공익 부문 여성 활동가를 위한 여성인재 양성과정이다.

매년 2차례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25명 안팎의 활동가들이 이화여대 모인다. 지난 5년간 총 99개국 2404명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10회의 교육을 통해 42개국 215명의 활동가들이 교육을 받았다. 인도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의 여성 운동가, 인도네시아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성희롱 반대 캠페인을 벌이다 중국 정부에 체포된 페미니스트 등이 참가했다.

이 교수는 2011년 EGEP 사업 기획에 참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성폭력, 섹슈얼리티, 여성 정책 등을 연구해 왔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소장을 맡았으며,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아하성문화센터 자문위원,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과 아시아여성학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 교수는 “아시아, 아프리카 여성 활동가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겪지만 여성으로서 비슷한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한 인도 활동가는 하루에 3시간만 전기 공급이 되는 곳에 살았고, 또 다른 활동가는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시내에 나가야 했다.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선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에 가야 하는 활동가도 있었다. 흔히 선발자 중 2~3명은 자녀 양육 문제, 여성운동가에 대한 신변 위협, 페미니즘의 ‘급진성’이 종교 원리와 어긋난다는 기관장의 판단 등의 이유로 한국행 비행기를 못타기도 한다. 여성 활동가들은 어느 곳에서나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와 제도, 여성 억압적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 중학생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한 일이 알려졌는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작년 아프리카 여성 활동가의 발표가 떠올랐어요. 그곳에선 사슴 가죽으로 만든 생리대를 사용하고, 모래를 쌓아 놓고 그 위에 앉아 있기도 한다는 거예요. 생리대가 없어서 학교에 못가고 그래서 교육 기회가 차단되고 경제적으로 취약해지다보니 성폭력 노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거죠. 깔창 생리대와 사슴 가죽 생리대는 여성의 빈곤과 재생산 지원 부족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두 사례는 연결돼 있는 거죠.”

군위안부 문제도 한국 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여러 아시아 여성들의 공통 이슈다. 교육 참가자들이 매번 일본군‘위안부’ 수요 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그런 아시아 여성들의 공감과 연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 교수는 “그런 점에서 EGEP는 아시아 여성학을 실천하는 현장이자 국가와 문화, 종교 등 차이를 넘어서 초국적 여성연대를 실험하는 새로운 장”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지난 5년간 매년 두 차례 EGEP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교수를 포함한 아시아여성학센터 팀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6000곳이 넘는 국제기구, 대학교, NGO를 대상으로 홍보를 하고, 밀려드는 수백 개의 지원서와 신청 서류를 검토하고, 강사진을 초빙하고 매번 다른 교육 과정을 준비하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2주간의 교육이 시작되면 이 교수와 팀원들은 지치고 힘들었던 준비 과정을 잊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열정과 헌신으로 똘똘 뭉친 활동가들을 만날 때면 팀원들 모두 그동안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고 보람도 얻는다”고 했다.

현재 EGEP 수료생이 늘어나면서 각 지역별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네트워킹이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별 EGEP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역에서 지역 언어로 교육을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네트워킹이 확대될 것”이라며 “정부가 아시아 지역의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을 넘어 활동가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려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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