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발동된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도 벌써 4년3개
월이 지났다. 그간 우리경제의 암적요인이었던 ‘지하경제를 뿌리뽑
고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실시되었던 금융실명제가 적지 않은
문제를 유발시켰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거액의 지하자금이 실명제 실시 이후 잘 움직이지 않아 기업의 자
금융통에 문제가 발생했고 사채금리는 급상승하여 기업의 원가상승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일반국민들 사이에 현금선호경향이 두드러지
게 나타났고 과소비풍조도 부채질 하였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절대
다수의 소액거래자들은 은행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하였
다. 정부에서는 금융실명제의 정착을 위해 실명확인과 실명전환에
대해서만 힘을 기울였지 예금에 대한 철저한 비밀보장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신한국당측에서 김대중 국민
회의 총재의 비자금의혹 제기를 계기로 예금비밀보장에 구멍이 뚫린
것이 드러나자 실명제 운영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신이 팽배해졌다.
재계에 이따금 나돌아다니는 수천억원의 괴자금 제공설, 검찰수사
를 받고 있던 한 공무원 집에서 현금 1억3천만원과 수표 2천만원
이 발견되었다는 보도, 호화판 해외여행과 거액의 판돈을 건 도박
이 성행한다는 사실 등은 모두 금융실명제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는 나름대로의 장점도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까
지 발생한 문제점들은 금융실명제의 정착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될
과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았다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
통령의 비자금은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전부는 아니지만 상
당부분의 지하자금이 제도금융권으로 들어가 산업자금화 된 것도
사실이다.
금융실명제가 기업의 자금난과 경영난을 부채질 했다는 재계의 주
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과거처럼 음성적인 자금운용이 쉬워진다고 해
서 기업경영난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기업경영난은 많은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하지 않고 무리
하게 금융기관에서 돈을 꾸어 무작정 사업을 확장한데 그 원인이 있
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는 금융실명제를 어떻게 수정보완해서 본래의 취지를 살
리도록 하느냐에 있다. 이를 위해 현재까지 지하에 깊숙이 숨어있
는 음성자금을 합법적으로 양성화하고 예금비밀을 철저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무기명 장기채권을 발행하여 지하자금을 산업화자금으로 흡수
하고 예금비밀의 보장을 위해서 법적근거없이 국가기관 등에서 금융
자료의 열람요구가 있을 때 거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필요하다.
또한 공평과세를 위해 긴급명령을 폐지하고 조세법안에 흡수할 필
요가 있으며 이자 등 금융소득을 종합소득세에 합산과세 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