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 페미니즘 이끄는 이화여대 EGEP 활동가 겸 강사

디안 레스타링쉬 인도네시아 가드자마다대 발굴산업연구원

“학교 다녀야 한다며 조혼 거부하고 종교 선택한

어머니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

디안씨 “나는 로비스트 페미니스트… 사람들의 연결이 중요해”

 

디안 레스타링쉬 인도네시아 가드자마다대 발굴산업연구원은 “초국가 운동에 참여해보니 페미니스트란 위대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며 “부모에게 받을 혜택보다 힘들어도 스스로의 삶을 결정한 내 어머니야말로 페미니시트 영웅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디안 레스타링쉬 인도네시아 가드자마다대 발굴산업연구원은 “초국가 운동에 참여해보니 페미니스트란 위대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며 “부모에게 받을 혜택보다 힘들어도 스스로의 삶을 결정한 내 어머니야말로 페미니시트 영웅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의 여성주의는 초국가 페미니즘이 주요 흐름이다. 서구 여성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나라의 여성운동이 평등에 기반을 두고 서로 영감을 얻고 교류를 시도하자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이화여대는 2012년부터 아시아‧아프리카 여성운동가들과 적극 교류하는 EGEP(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프로그램)를 진행해 오고 있다. 디안 레스타링쉬 인도네시아 가드자마다대 발굴산업연구원(34)은 EGEP 활동가로 참가했으며 지난달에는 강사도 맡았다. 그의 삶은 초국가 여성운동이 어떻게 여성들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초국가 여성운동이 어떻게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해 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3년 처음 EGEP에 참여했는데 그곳에 모인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를 주장했을 때 너무 어색했어요. 저에겐 그들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동시에 이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지요.” 디안씨는 자신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게 페미니스트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했어요. 인도네시아의 카르티니 같은 사람이요. 그분은 19세기 말 가난한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런데 초국가 운동에 참여해보니 페미니스트란 그런 위대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어요. 나의 페미니스트 영웅은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머니는 학교를 다녀야 한다며 조혼을 거부했고,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며, 종교도 스스로 선택했어요. 부모에게 받을 혜택보다 힘들어도 스스로의 삶을 결정했지요.”

디안씨는 대학에서 발굴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인도네시아 전역에는 석유, 가스, 광물 등 다양한 자연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다보니 광산 관련 일을 하는 여성들의 삶을 알게 됐다.

“망간을 캐려고 여성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받는 임금은 고작 3달러에 불과해요.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일하지만 그들에게 작은 마스트 하나도 제공되지 않아요. 안전 수당은 생각도 못하죠. 이런 현실을 보고 연구소에 제안한 적이 있어요. 여성과 자원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하자고요.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정치적이라고 비난을 했지요. 심지어 유럽의 한 광산 투자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디안, 우리는 네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어. 필요한 것이 뭐냐?” 디안씨는 여성관련 일을 하다보면 이런 협박을 받기도 한다며, 자신은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저는 집을 짓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빌려주지요. 그런데 집을 지을 때 낡은 나무 기동, 버려진 창문을 재료로 사용해요. 집을 짓기 위해 숲을 파괴할 필요가 없어요. 이런 사업뿐 아니라 커피 생산지역 농민들을 돕기도 하지요. 그들에게 포장 봉투와 지역 특산을 나타내는 스티커를 제공해줘요.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커피를 팔도록 도와주고 있지요. 그들은 처음으로 커피를 비싼 가격에 팔아봤다고 해요.”

디안씨는 자신을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다.

“저는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봐요. 김은실 이대 교수는 탁월한 분이지요, 그분을 인도네시아 젊은 학자들과 여성운동가들과 연결해 주고 싶었어요. 이론가를 현장에 데려가고 싶었지요. 그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신념에 가득찬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김 교수가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여러지역에서 젊은 학자와 활동가들이 몰려왔지요. 지식만을 전달하지 않았고,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어요. 그뿐 아니라 가드자마다대 총장과의 만남도 주선했지요. 대학에 젠더학이 있지만 아직 진보적이지 않아요. 김 교수의 등장은 연구가와 운동가들, 대안적 농업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줬어요.”

디안씨는 이미 자신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이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후원자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누가 후원하느냐에 따라 운동 방향이 바뀝니다. 여성운동은 그런 면에서 독립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