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자유 논의 양성평등 잣대로
▲21일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여성만화인협의회, 젊은만화작가회 등 22개 문화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대중예술가의 창작의 권리와 독자들의 볼권리를 보수주의적인 법논리로 침해했다며 강도 높게 항의했다.
<사진·민원기 기자>
7월 12일 사법부(서울지법 형사 단독 1부 김종필 판사)가 만화가 이현세
씨의 '천국의 신화'를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죄를 적용, 벌금 3백만 원을 선
고함에 따라 예술작품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21일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여성만화인협의회, 젊은만화작가회
등 22개 문화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대중예술가의 창작의 권리와 독
자들의 볼권리를 보수주의적인 법논리로 침해했다며 강도 높게 항의했다.
25일에도 한국만화가협회, 여성만화인협의회 등 만화관련단체들이 모여 창
작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한국만화탄압 비상대책위원회(회장 이두호)는 23일 만화인들의 입장
표명을 위한 침묵시위를 종로구 관철동에서 가졌으며, 법무부 사이트에 항
의 메일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비대위는 또 9월중 ‘만화표현자유’
를 주제로 한 만화전을 기획하고 있으며 만화 관련 정부지원과 정부차원의
만화상을 거부하는 등 만화표현 자유를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겠다
고 밝혔다.
여성만화가협의회 강경옥 회장은 “작품의 좋고 나쁨과 음란성 여부는 국
민의 판단에 맡길 일”이라며 검찰이 창작물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제도에
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며 창작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비대위와 입장을 같이한
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현세씨가 인기있는 남자작가이기 때문에 이처럼 문화
계 전체가 단결하여 공동대처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고 있다. 만화잡
지에 연재하던 여성만화가 이정애씨의 '열왕대전기'도 97년 청소년보호법
을 의식한 출판사가 연재물을 수정액으로 지워서 출판한 일이 있다. 그 때
문에 이정애씨는 연재를 중단하고 한때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의 최근
작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도 같은 이유로 부분 손상된 채 출판되어
독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다른 작가인 원수연씨의 '렛 다이
'란 작품은 유해매체목록에 올라 작가가 연재를 중단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작품들은 동성애 혹은 다양한 성적 취향을 표현한 것으로, 이
분법적 통념을 벗어나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캐릭터를 표현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용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큰 문
제없다는 반응이다. 소재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폭력물은 물론 살
인행위가 등장하는 모든 영화며 예술작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는 독자도 있다. 물론 앞서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이현세씨처럼
사법적 판결을 받지 않은 ‘경미한’수준이라는 차이는 있어도 이들에 관한
부분은 단 한번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만화 애독자인 이모씨는 “음란
하다고 판단하는 잣대 자체가 남성중심적 시각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현세씨의 작품 중 수간이 문제가 되었는데, 그 많은 남자 작가들이 그리
는 강간 혹은 매춘의 장면은 왜 문제삼지 않느냐”면서, 그런 기준이 여성
만화가들에게도 적용되어 여성만화가를 남성작가보다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표현 범위도 훨씬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만화가 김진씨는 “아직까지 여성 만화가의 경우 심하게 걸리지는 않
았지만, 남녀 구분을 떠나 우수한 컨텐츠 확보 혹은 정부가 지향하는 대로
만화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근본적으로 검열은 사라져야 한다”고 잘라 말
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