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연일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2030세대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신문은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쟁점에 관한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까칠한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페미까톡)’를 기획 연재합니다. 연재글에 관한 의견이나 원고는 saltnpepa@womennews.co.kr로 보내주시면 검토 후 연락 드립니다.

 

생리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부담스러운 생리대 가격을 내리자며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일대에서 열린 캠페인 ‘생리대 프로젝트’ 현장. ⓒ이세아 기자
생리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부담스러운 생리대 가격을 내리자며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일대에서 열린 캠페인 ‘생리대 프로젝트’ 현장. ⓒ이세아 기자

생리... 생리... 그 애증의 이름 생리.

여자의 몸은 생각보다 굉장히 주기적이고 규칙적이며 또 복잡하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냥 기분이 굉장히 더럽고 이유 없는 짜증이 밀려오며 예쁜 옷을 입어봐도,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봐도, 사랑스러운 남자친구의 스킨쉽마저 귀찮고 소름이 돋고 예민하며, 날 건드리는 모든 생명체를 눈앞에서 다 쓸어버리고 싶은 근본을 알 수 없는 파괴의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고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직감적으로 휴대폰에서 성생활과 피임약 복용 여부, 그리고 호르몬 주기의 각종 은밀한 개인사가 담긴, 바로 그 어플을 켜 확인해본다. 1주, 2주, 3주, 4주…. 

때가 온 것이다. 바로 그때가! 시간은 어찌나 이리 또 빨리 가는지. 탐폰은 미리 사놨었나? 지난달에 쓰고 몇 개가 남았지? 또 언제 그걸 사러 가나, 솔직히 생리대나 탐폰 너무 비싼 거 아냐?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되는 진정제는 몇 알이 남았지? 귀찮음과 짜증과 동시에 이번 달도 별 탈 없었다는 안도감이 거대한 파도로 밀려와 몸을 쓸어간다.

초콜릿, 젤리, 빵, 버터가 듬뿍 들어간 과자, 케이크, 아이스크림이 수챗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물 마냥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먹어도 먹어도 짜증 지수만 올라가고 이때쯤이면 슬슬 아랫배가 싸-하게 아려오기 시작한다. 감히 그 신호를 무시하고 생리통 진정제를 자주 복용하면 내성이 생긴다는 미신 때문에 약을 건너뛰게 되면 다음 날 혹은 그 다음 날부터 이제 드디어 포궁의 보복이 시작된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침대 시트에서 빨간 자국을 발견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또 저 핏자국을 어떻게 지우나 짜증이 나긴 하지만, 길거리에서 걷는 도중에, 혹은 수업 도중에 갑자기 움찔하며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보다는 나으니까.

얼른 파우치를 뒤져 탐폰을 챙겨 화장실로 향한다. 다행인 건 탐폰을 쓴 이후로 굴 낳는 느낌은 사라졌다는 거다. 대신 생리를 하는 일주일 내내 온 신경은 피가 새느냐 마느냐에 쏠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수시로 손으로 엉덩이를 더듬어 확인한다. 그래서 강제로 일주일 동안 검은 바지만 입고 다니는데, 그마저도 얼룩이 생길까 봐 어디 편하게 앉지 못하고 습한 느낌이 불쾌하다. 허리는 허리대로 척추가 천이십개의 자잘한 조각으로 부서져 내리는 느낌을 참으며 서 있어야 한다.

탐폰을 낄 때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어플리케이터를 넣을 때 정도쯤이야 익숙해서 문제없지만 주사기처럼 내용물을 밀어 넣을 때는 이물질이 들어온다는 그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몸을 관통당하는 느낌이 곤욕스럽다. 매번 혼자 화장실에서 탐폰을 낄 때마다 "여자들은 탐폰낄 때 오르가슴을 느끼나~?" 라는 멍청한 질문을 했던 몇몇 남자들이 생각나면서 '그럼 지들은 관장할 때 오르가슴 느끼나? 자기 똘똘이가 얼마나 작으면 탐폰이랑 그걸 비교하지' 괜히 입을 삐죽거리게 된다.

생리대를 하고 다녔을 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다. 날은 더운데 땀은 차지, 살과 생리대가 닿는 부분은 쓸려서 아프지, 온몸에서 피 냄새가 나서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지, 또 샐까 봐 전전긍긍에, 굴!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때 밑이 빠지는 느낌과 함께 굴 어미가 된 듯한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분은 또 어떻고...!

하지만 이젠 이런 불편한 점 대신, 탐폰을 낀 지 1시간... 2시간... 이런! 몇 시간이 지났지...? 5시간...? 빨리 이걸 빼야 해... 어서 이걸 빼지 않으면 독성쇼크가 와서 난 다리 한짝을 잃거나 죽을지도 몰라... 화장실... 아 맞다 갈 때 탐폰 하나 가져가는 것 잊지 말고.

화장실에 가 다리 사이의 빨갛게 물든 줄을 잡아당기면 소시지가 하나 나오는데 그 느낌도 정말 가공할 만하다. 이젠 마치 신체의 일부가 된 듯한 그 소시지를 꺼내는데 꼭 마치 내장이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얼른 내 눈앞에서 이걸 치워버리기 바쁘고 또다시 하얀 새 걸 넣는 거다. 그 과정에서 조금 지체하다 보면 어김없이 다리 사이로 다시 빨간 선 하나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아, 짜증. 씻어야 하잖아. 물티슈도 없는데.

나오면서 물 한모금 마시고 약을 찾는다. 예전에는 파라세타몰 한 알만 먹어도 금방 통증이 사라지더니, 흡연해서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먹는 음식 때문인지 하루 최대복용량인 1000mg 3알을 털어 넣어도 쉽게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약아 빨리 녹아서 빨리 너의 힘을 보여주렴...! 누군가 쇠갈고리로 아랫배 내벽을 자비 없이 벅벅 긁어내는 것 같다. 그때쯤이면 다리는 퉁퉁 붓고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으며 뼈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는 듯하다.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 왜 이렇게 여성의 몸에만 잔인한 걸까. 억울하기도 하다. 

만나자는 애인의 문자에 생리 중이라고 답장한다. 3일째 되는 날이 제일 아쉽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머릿속엔 음란한 생각밖에 없는데, 3주간 불필요하게 쌓아온 포궁 내벽의 피와 살점이 다리 사이로 폭포수같이 배출되어 다시 원상태로 정화되는 수도와 명상의 시간이 강제된다. 거대한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며칠간의 작은 여진을 마무리로, 그렇게 생리 전 증후군 기간과 생리를 포함하는 약 2주간의 긴 시간이 몸과 마음을 폭풍같이 훑고 지나간다. 

아, 드디어 생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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