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건립 막는

일본 반대 시위 거세

한일합의 앞세워

거듭 철거 요청

반성과 사죄 없다면

“소녀상 계속될 것”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의 발. ⓒ변지은 기자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의 발. ⓒ변지은 기자

올해로 광복 71주년을 맞았지만, 그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바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다. 12·28 한일합의와 화해·치유재단 출범 등이 이어지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출구는 더 멀어진 듯하다. 한일합의 과정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이전 문제가 거론되면서 갈등은 더 심화됐다. 곧 8·15 광복절을 맞이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물론 소녀상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소녀상을 철거 안 하면 돈을 주니 안 주니, 그 돈 우리가 받을 줄 압니까. 배상이라고 하기 전에는 그까짓 푼돈 한 푼 주는 거 택도 없습니다. 대사가 (소녀상을) 보기 싫으면 대사가 이사를 가라!”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어김없이 1243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후손들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한푼 한푼 모아서 소녀상을 세웠는데 툭하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한다”며 분개했다.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한겨울 추위를 뚫고 세상에 나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주최하는 수요시위가 1000회를 맞이하는 날이었다. 많은 시민의 따뜻한 마음과 성금이 모여 이뤄낸 일이지만, 그 누구도 “즐겁다” 말할 수 없었다. 소녀상의 탄생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 이후 20년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2016년 8월 현재 소녀상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을 비롯해 서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고양시, 거제시, 군포시, 성남시, 수원시, 화성시, 고양시정부종합청사, 서울 이화여대 앞, 대전시, 울산시, 강릉시, 전주시, 남해군, 원주시, 청주시, 광명시, 서울 노원구, 세종시, 서울 성북구 한중 평화의 소녀상, 서산시, 서울 정동길, 의정부시, 포항시, 천안시, 해남군, 제주시, 아산시, 목포시 등 국내 30곳에 세워졌다.

해외에선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앞, 미국 미시간주 사우스필드 한인회관 앞, 캐나다 토론토시 한인회관 앞, 호주 시드니 애시필드 연합교회 등 4곳에 자리 잡았다. 소녀상은 온전히 그 지역 주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진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는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다.

 

10일 열린 1243번째 수요시위. ⓒ변지은 기자
10일 열린 1243번째 수요시위. ⓒ변지은 기자

소녀상은 만화, 사진, 그림 등 다른 분야와 만나 확산되고 있다. 올해 2월 3일부터 3월 31일까지 진행한 작은 소녀상 만들기 펀드에는 9003명이 참여해 2억6652만6073원이 모였다. 목표 금액인 1억원을 훌쩍 넘긴 액수다. 제작비를 제외한 후원금 전액은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했고, 2만여 명이 작은 소녀상을 갖게 됐다.

국내 소녀상 건립 예정지는 곡성군, 김포시, 나주시, 논산시, 상주시, 서울 강북구·구로구·동작구, 서천군, 순천시, 시흥시, 안산시, 양평군, 예산군, 오산시, 전라남도, 제천시, 춘천시, 평택시, 홍성군 등 20곳이다. 오는 10월엔 아시아 지역 최초로 중국 상해에 소녀상을 세울 예정이다.

해외 소녀상은 대부분 재외동포의 주도로 이뤄졌고,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에 부딪쳤다. 해외에서 첫 번째로 소녀상을 맞이한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시가 공청회를 열었을 때 일본인들은 “미국이 왜 한일 외교 문제에 간여하느냐”고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녀상을 세웠지만, 철거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시는 소녀상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려 했지만, 일본의 반대로 디트로이트 한인회관 앞에 설치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소녀상을 세운 캐나다 토론토는 원래 계획한 도시가 아니었다. 경기도 화성시와 자매도시인 캐나다 버나비 시에 설치하려 했지만 역시 일본인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달 6일 호주 시드니 한인회관에 세운 소녀상도 사연이 있다. 지난해 8월 시드니 한인 밀집지 스트라스필드 역 광장에 소녀상을 세우려던 계획이 지역 의회의 표결로 무산됐고, 이 소식을 접한 애시필드 연합교회 빌 크루스 목사가 나섰다.

크루스 목사가 한인사회와 협력해 건립을 추진하는 동안 일본 측의 집요한 방해는 계속됐다. 항의하는 협박성 이메일은 물론 인종차별 반대법을 앞세운 소송 압력도 있었다. 시드니 주재 일본 총영사에겐 앞으로 일본 입국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소녀상은 한인회관 앞 제막식 행사 직후 교회 뒷마당으로 옮겨졌다. 한인회관보다 여러 대의 CCTV가 있는 교회가 더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경작업이 끝나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교회 앞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한일합의 과정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 문제가 거론되면서 소녀상 지키기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변지은 기자
한일합의 과정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 문제가 거론되면서 소녀상 지키기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변지은 기자

소녀상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한일합의 이후 일본 집권 자민당 등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 1월에는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총리 보좌관이 미 정부에 위안부 소녀상 확산을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한일 합의문에서 소녀상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철거가 이번 합의의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는 부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6일 국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소녀상 철거 이면 합의설과 관련해 사실무근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은 다음날 바로 “세부사항의 하나로 (소녀상 철거가) 포함됐다”고 반박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소녀상 확산을 막을 방법은 하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범죄에 대해 국가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일본이 사죄와 반성을 하면 더 이상 제작하지 않겠다”는 것이 소녀상 조각가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의지다.

“일본 정부가 사죄할 시효가 얼마 안 남았다. 할머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사죄할 대상이 없어진다. 반성할 기회조차 그냥 흘려보낸다면 일본은 영원히 먼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한일화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이 필요하다.”(김운성)

12·28 한일합의 이후 지금까지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반대 대학생 행동’의 소녀상 지키기는 계속되고 있다. 폭염과 싸우는 학생들에게 시민들은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등 간식을 건네며 응원하고 있다. 붙박이 농성을 결심한 학생들은 휴학까지 감행했다. 이 힘든 농성을 끝낼 방법, 소녀상의 걸음을 쉬게 할 방법은 모두 한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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