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직후인 지난 5월 20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열린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에서 한 여성이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직후인 지난 5월 20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열린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에서 한 여성이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소녀는 왕자가 필요없어’ 문구 새겨진

평범한 티셔츠가 왜 1억3000만원어치나 팔렸나

일베가 치마 입으면 메갈? 진보진영 파고든 위험한 ‘메혐’

남성의 침묵과 방조로 일상의 놀이 된 여성혐오

여혐에 저항한 메갈리아... 미러링 전략은 매우 현명했다

서민 교수의 선언 “이제 페미니즘 혁명은 시작됐다”

“일베가 치마를 입으면 바로 메갈리아지요.”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 J씨가 메갈리아(이하 메갈)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한 말이다. 이 발언이 안타까웠던 건 그가 평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재단하던 이였기 때문이다.

그가 메갈에서 일베를 느낀 이유는 메갈이 저지르는 언어폭력이 일베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일베가 우리 사회에서 패륜 집단으로 꼽히는 건 그들이 약자를 혐오해서다. 그들은 진보와 여성, 전라도, 그리고 기타 약자들을 노골적으로 혐오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에 대한 조롱이었다.

일베와 메갈리아는 다르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할 때, 일베 회원들은 그 옆에서 폭식 투쟁을 했다. 일베와 그 옹호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발달한 외국에서도 인종 차별과 같은 약자 혐오는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메갈은 여성에 비해 상대적 강자인 남성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 십여년 동안 남성들은 온‧오프에서 당연한 듯 여성혐오를 시전했다.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XX녀’를 기억하는가? 지하철에서 여성이 다른 누군가와 싸우기만 하면 ‘지하철 패륜녀’ ‘4호선 막말녀’ 같은 동영상이 돌았고, 거기에는 조롱하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지하철에서 더한 짓을 하는 남성들이 수없이 있었지만, 휴대폰 카메라는 오직 여성만 노렸다. 조금 지나자 그 카메라는 여성의 치마 속을, 그리고 여성화장실을 비추기 시작했다. 자기 아내나 딸이 샤워하는 모습을 찍어 여럿이서 감상하는 소라넷 사이트까지 있었으니, 집 안에서도 여성들이 안심할 공간은 없었던 셈이다.

이것 외에도 매년 2만여 건의 성폭력이 벌어지고, 남성들의 폭력으로 숨지는 여성도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여혐은 오히려 심해졌다. 남성들은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남성들의 침묵과 방조가 아니었다면 여성혐오가 이렇게 만연하지 못했으리라.

예를 들어 단톡방에서 일부 남학생들이 같이 수업을 듣는 여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언사를 할 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화를 내고 그들을 말렸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배제되는 게 두려웠던 남학생들은 소극적이나마 그 성희롱에 동참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남학생들이 아무 죄의식 없이 동기 여학생을 희롱할 수 있는 이유였다.

일베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내뿜는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남성들이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그 사이트가 존속할 수 있었을까?

 

메갈리아가 진행한 ‘포스트잇 프로젝트’에선 여성혐오를 비판한 많은 발언이 공개됐다. 맨위 왼쪽은 메갈리아 로고. ⓒ메갈리아 홈페이지
메갈리아가 진행한 ‘포스트잇 프로젝트’에선 여성혐오를 비판한 많은 발언이 공개됐다. 맨위 왼쪽은 메갈리아 로고. ⓒ메갈리아 홈페이지

남성들은 원래 페미니즘을 싫어했다

“메갈은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먼, 정신병자 집단입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여혐의 만연은 결국 메갈의 탄생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상했다. 남성들이 메갈에 대해 엄청난 증오감을 표출했으니까.

그 긴 기간 동안 여혐을 해놓고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벌어진 남혐이 그토록 견디기 힘든 것일까? 여혐에 동원됐던 거친 말들을 생각하면 메갈이 구사하는 말들은 귀여운 수준인데 말이다. 남성들은 급기야 메갈을 협박한다. 그런 식으로 해봤자 여성혐오가 더 커질 뿐이라고.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메갈이 존재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여성혐오가 일상의 놀이가 될 만큼 만연하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큰 거짓말은 그들이 메갈을 페미니즘과 애써 구분할 때 생긴다. 메갈이 있기 전에도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극도의 증오감을 표출했으니까. 오죽하면 여성들이 불편한 상황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며 정체성을 인증해야 했을까? 메갈이 나오기 이전, 남성들은 페미니즘의 진정성을 따졌다.

즉 페미니즘은 원래 좋은 것인데, 소위 김치녀들이 하는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 당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성들은 ‘페미나치’ 혹은 ‘꼴페미’라고 불렸는데, 이는 지금 같은 말을 하는 여성들이 ‘메갈충’이나 ‘메갈돼지’로 불리는 것과 같다. 즉 남성들은 원래 여성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쾌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령 메갈의 언어가 폭력적이라 해도, 남성들이 그렇게까지 분노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남성들이 메갈과 비교하는 일베를 보자. 언젠가 일베 회원 중 하나가 국민여동생 수지의 입간판에 대고 성행위를 하는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 사진을 보고 많은 이들이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들은 그런 행위를 하며 쾌감을 느꼈다. 수지가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비단 이 사건 뿐 아니라 인터넷에 ‘일베 & 범죄’를 넣고 검색을 하면 일베가 실제로 저지른 범죄들의 목록이 뜬다. 그러니까 일베는 단순히 자기네 사이트에 모여서 약자를 비하하는 글을 쓰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란 얘기다.

반면 메갈은 기껏해야 ‘한남충’ 운운하는 글을 사이트에 올리는 게 고작이다. 이게 남성들에게 엄청난 위협이라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건 그들의 판타지가 메갈로 인해 깨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의 여성들은 때리면 맞고 성추행을 당해도 찍 소리 못하는 순종적인 존재여야 하는데, 오히려 남혐을 하겠다고 달려드니 괘씸한 것이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일베와 오유(오늘의 유머)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일베가 정치색을 배제하고 오직 여성만 욕했다면 지금처럼 지탄의 대상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쪽지를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쪽지를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혁명은 시작됐다

남성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이 혐오감을 표출할수록 메갈은 점점 더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메갈이 거친 언어로 남성들을 욕하지 않았다면 여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남성들의 폭력을 그대로 미러링하자는 메갈의 전략은 매우 현명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이유 없이 가해지는 여혐에 속으로 분을 삭이는 게 고작이었지만, 메갈이 생기고 난 뒤에는 여혐에 대해 당당히 맞서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상황

남: 너 혹시 김치녀야?

여: 아니에요. 저, 더치페이도 열심히 하고, 남성 존경해요.

 

메갈 이후

남: 너, 김치녀야?

여: 뭐라고, 이 한남충아? 꺼져.

 

실제로 메갈 사이트에는 메갈로 인해 삶에서 자신감을 찾았다는 여성들의 고백이 심심치 않게 실린다. 메갈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한 티셔츠-소녀에겐 왕자가 필요 없어, 라는 문구가 새겨진-가 1억3000여만원어치나 팔린 것은 메갈에 대한 여성들의 열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으로도 남성들은 메갈에 대한 탄압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 혁명은, 이미 시작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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