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독일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베를린 연방 총리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4년 3월 독일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베를린 연방 총리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프랑스, 벨기에, 독일에서 잇따라 일어난 테러와 폭력난동에 대해 독일 메르켈 수상이 다시 한번 이렇게 대응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Wir schaffen das). 독일 정부는 난민을 지원하면서도(fördern), 독일사회 통합을 위해 난민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를 보일 것을 더욱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fordern).”

2015년 9월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무분별한’ 난민 유입의 빗장을 풀었고 이것이 오늘날 연속 테러의 원인이 됐다는 극우파의 정치적 선동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메르켈은 보였다. 다시 “우리는 할 수 있다. 독일은 그만큼 충분히 강한 국가다”라는 자신감과 함께 메르켈은 다음 선거에 자신의 명운을 사실상 걸었다. 메르켈의 말을 기다렸다는듯 시작된 극우 민족주의적 선동이 ‘독일을 위한 선택(AfD)’ 등 극우정당의 연방의회 진출과 메르켈의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실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미 시리아에서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독일에 와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동유럽에서 계속 난민과 이주민 유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입 난민 중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신에게 한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이 메르켈에 대한 지지를 거두기도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나?

첫째, 이슬람 테러와 폭력난동을 구별하는 독일 언론과 대중의 냉철한 반응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이 저질렀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와 여자친구에 대한 원한을 가진 자가 저지른 폭력난동을 독일 대중은 즉시 구분해 받아들였다.

이란에서 이주한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청년으로 자란 자가 9명을 죽인 뮌헨 폭력난동 후 독일 교육체계에 대한 반성이 우선하는 논쟁과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모든 사건을 이슬람 테러로 규정하는 극우의 선동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이러한 언론과 대중에게 메르켈은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둘째, 잇따른 테러 사태에 프랑스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본권 일부를 제약함으로써 대응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이슬람 테러 목적이 독일 사회에 불안과 공포, 미움을 야기하는 것임을 명백히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은 또 다른 불안, 공포, 미움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입장도 밝혔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너무 허술했던 경찰 장비를 보완하고 난민 신원 조회도 더 철저히 해야 함을 당연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대응은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전쟁이지,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 아님을 메르켈은 분명히 하였다.

다음 선거에서 쉽게 이기기 위해 터키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독일사회에 이미 자리잡은 이슬람 이주민 집단을 제물로 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들 중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자라고 있다는 명분아래 경찰이나 정보국의 감청 권한도 강화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제한하는 정책도 시도할 수 있다. 전통적 백인 독일대중과 이주민 집단 간 편가르기를 통해 기독민주연합의 전통적 지지집단으로서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이렇게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학교, 취업 과정에 이르기까지 인생 주기에서 이주배경집단을 어떻게 독일사회가 통합․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한 번 독일사회에 던지면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우리는 아주 쉽게 정치인을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아기 잘 낳는 여자, 예쁜 여자’를 찾는 정치인을 누가 국회로 보내주는가? 우리, 유권자다.

학대·폭력 사건이 났을 때, 흉악범을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고 장기적 차원의 해결책을 만들자는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CC TV 설치 확대, 일벌백계적 형량 부여, 피해자․가해자 상황에 대한 자극적 보도와 상품화에 열광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인권 보호를 무시해도 좋은 수준의 국정원·경찰 등 공권력 강화에는 관심도 없다. 그리고 흉악범에게 앞장서 돌 던지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다. 이러한 대중의 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가 그리 좋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 정치인은 그런 대중의 정서를 활용할 줄 아는 자다. 그래서 이른바 ‘국론통일’을 내세우면서 역으로 편가르기 정치를 한다. ‘국론분열세력’을 빨갱이로 악마화해서 당선에 필요한 표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입에 달고 살지만 자신의 임기 뒤에도 국가와 국민은 생존해야 한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망각한 듯 현재의 이해관계에 얽매인 모습만 보여준다.

언젠가 한국 언론이 여성 리더십을 이야기하면서 메르켈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교하고 마치 깊은 공감대를 가진 친구처럼 묘사한 적이 있다. 최근 영국에서 여성 수상이 나오고 미국에서도 여성 최초 대통령 후보가 탄생했기 때문에 또 여성 리더십․지도자 이야기가 나올 법 하다. 그러나 이제 성별만 갖고서 하는 여성 리더십 이야기는 그만 하자. 국민을 편가르기 하여 선거에 이기면 그만이라는 ‘선거의 달인’ 같은 리더십을 메르켈은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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