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열사 37주기] “사장이 어린 여공들을 버렸습니다”
[김경숙 열사 37주기] “사장이 어린 여공들을 버렸습니다”
  •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6.08.09 08:30
  • 수정 2016-08-11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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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11시 경기도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추모제 

 

1979년 8월 11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 숨진 김경숙 열사. 당시 21세였다.
1979년 8월 11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 숨진 김경숙 열사. 당시 21세였다.

8월 11일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9년 경찰이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던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21세의 나이로 사망한 김경숙 열사 37주기다.

YH사건은 1979년 국내 최대 가발공장인 YH무역이 여공들의 임금 수개월 치를 체불한 채 수십억원의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폐업을 하면서 촉발됐다.

김경숙은 1958년 전남 광산군(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맏딸인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이 사망하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남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누에고치공장에서 노동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에서 일하면 급여를 배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상경했다. 작은 봉제공장을 전전하다가 대기업 수준의 YH무역에 어렵사리 취업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노조가 설립한 야학에 입학했다. 노조 지도부 활동도 시작했다. 입사 3년째가 되던 해 회사는 경영난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폐업을 공고했다.

김경숙을 포함한 10~20대 여공 수백 명은 공장 기숙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농성의 직접적 이유는 회사 정상화 촉구였지만 이들은 각성제 복용을 강요하는 밤샘노동 및 휴일노동과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 환경 전반에 대한 분노가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노동자들은 회사 내 농성으로 성과를 얻지 못하자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 8월 9일 진입했다.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어린 여공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 여러분을 밑에서 지켜주겠다’고 말했고 농성을 지원했다. 세상이 이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농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틀 후 1000명이 넘는 경찰이 당사에 진입해 노동자들은 물론 취재 기자, 신민당 국회의원 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건물 옥상에 올라간 노동자들 중 김경숙이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김경숙의 사망 경위를 강제 해산 직전 스스로 동맥을 끊어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했다. 2008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를 반박하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추락 사망한 시점이 진압 개시 이후였고 동맥 절단 흔적이 없었으며 손등에 쇠파이프로 추정되는 둥근 관에 가격당한 상처와 후부두의 상처가 발견됐다며 경찰의 폭력 진압 사실을 규명했다.

 

1979년 8월 9일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당사에 진입해 농성을 벌이던 YH무역 여공들을 격려하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1979년 8월 9일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당사에 진입해 농성을 벌이던 YH무역 여공들을 격려하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김경숙이 죽기 사흘 전 고향의 어머니에게 부쳤던 편지가 사망 이후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보고 싶은 엄마! (중략)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 많은 회장은 미국으로 도망가고 없고 사장들은 자기들만 잘 살겠다며 지금 우리 근로자들을 버렸습니다. 회사 문을 닫겠다며 폐업공고까지 내버렸답니다. 그러나 저희 근로자들은 비록 힘은 약하나 하나같이 똘똘 뭉쳐 투쟁하고 있습니다. 특히 엄마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사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사람이어서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니, 내 편지가 아니면 그 어떤 편지를 받더라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고 있으니까 이 딸을 먼저 믿으시라는 겁니다. (중략) 준곤이는 이 누나가 대학까지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엄마가 대신 말 잘해주세요. 이 누나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회사가 정상화되면 꼭 찾아뵐게요. (중략) 1979년 8월 7일 서울에서 경숙 올림>

YH사건은 이후 정치적으로 확대됐다. 10월 4일 집권당인 공화당이 이 사건과 김영삼 총재의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에서 제명 처리했고, 이에 반발한 야당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에 10월 16일 유신 체제에 대한 반발과 정치 탄압 중단, 김영삼 제명 철회를 요구하며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됐다. 이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의 만찬 자리에서 부마항쟁 관련 대책을 논의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저격하면서 유신 체제가 종말을 고했다.

김경숙 열사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내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YH무역 노조위원장이었던 최순영 전 의원에 따르면 김영삼 총재가 이곳에 김 열사를 안장하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3년 전 ‘김경숙상’을 제정해 여성 노동운동의 뜻을 기리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처우가 열악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김경숙 열사 추모제를 오는 11일 오전 11시 경기도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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