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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노릇과 우리교육에 대한 이 교육일지의 계속된 ‘시비걸기’에

도 불구하고 드물지 않게 “어떻게 하면 애들이 공부를 잘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인사치레이기도 하지만 대학 교수집에

무슨 비법이라도 있지않을까 궁금해하는 것 같다. 한번쯤 이러한

궁금증에 답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아이에게 공부에 대해 무슨 훈

수를 했을까 또는 가장 많이 해준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

다. 초등학교 때는 “알 것만 알고 놀아라”, 중학교 때는 “수업

시간만 열심히 해라”,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될 수 있는 한 빨

리 자라”로 요약되었다.

엄마 흰머리카락 때문에 전교○등 안에 든 ‘인간승리’

어발이는 초등학교를 한반에 10명씩 주는 우등상 한번 못받고 졸

업했다. 학기말이면 집에 올 때 약간 기가 죽어서 아무래도 자기가

11등인 것 같다면서 성적표를 내밀고는 했다. 그런 일이 수차례 되

풀이되었기 때문에 6학년을 마칠 때 우리는 미리 어발이가 반에서

11등으로 우등상을 못받았을 것이라고 위로까지 해주었다. 초등학교

때 우등상 한번 못타고 졸업한 그 경험은 어발이에게 매우 큰 재

산이다.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해심.그리고 초등학

교 때 실컷 놀아본 경험이 주는 좋은 점들.

중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의 훈수는 “수업시간만은 꼭 집중해라”

였다. 그래야 수업 끝나고 좀 놀 수 있지…. 어떻든 중학교에 가서

이른바 ‘마의 두자리’성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발이가 중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어발이는 초등

학교 때보다는 좀 더 많은 용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씩 흰머리카락 한올에 백원씩 뽑는 아르바이트를 자청했다. 일주일

에 10개씩 뽑다가 20개, 30개가 되었고 마침내는 어발이 스스로 지

쳐서 “더 이상 뽑을 필요가 없도록 엄마 머리칼이 빨리 하얗게 세

어버렸으면 소원이 없겠다”가 되었을 때쯤 재미있는 협상카드를 내

밀었다. 전교 ○등 안에 들면 흰머리 안뽑아도 되겠느냐고. 도대체

어림없는 일이어서 서로 선뜻 합의했다. 그러나 웬걸 2학년말이 되

기 전에 더 이상 흰머리 뽑을 필요가 없는 성적표를 깃발처럼 흔들

며 들어왔다. 중3이 되었을 때 어발이는 담임 선생님이 자기 이야기

를 할 때면 꼭 자기가 ‘인간승리’같다나.

웬 인간승리? 담임선생님이“어발이는 초등학교 때 우등상 한번 못

받았다죠”, 그러면 아이들이 “예, 그래요” 하고 책상을 치면서 좋

아하고 선생님은 그 순간 “그러니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라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발이의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공부만 한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아이

들 시간 아껴주려고 궂은 일 면제시키고 차 태워 준다고 성적이 올

라가는 것도 물론 아니다. 여기서 어발이가 엄마 흰머리 뽑기 싫어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유일한 이유

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흰머리 뽑는 일 때문에 공부를 못

하게 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역시 ‘최악의 엄마’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발이가 부모 덕을 안본 것은 아니다. 초

등학교 때 ‘가’자를 ‘ㅓ<’라고 써가지고 다녔을 때 윽박지르기

보다는 재미있어 했고, 분수를 배울 때 4분의 1을 이해할 수 없어

해서 사과 하나를 가져다가 네 조각으로 잘라서 보여주었다. 그때야

“그게 분수야” 그러더니 “학교에서도 진작 그렇게 좀 해주지”

하던 그런 애였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이러한 ‘늦게 깨는 애’들

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황이다.

팝음악 잡지에 <과학동아> 끼워 사주기도

물론 가끔씩 책략을 쓰기도 했다. 이를테면 책같은 것을 사줄 때

‘끼워사기’ 같은 것. 중 3이 되었을 때 어발이가 가장 구독하고

싶어한 잡지는 라는 팝음악 잡지였다. 사달라고

했을 때 무슨 차이름은 아닐테고 그것이 뭔데라고 당연히 물었다.

‘글로벌 뮤직 비디오’라는 그 잡지에는 10대들이 좋아하는 가수

(주로 여자가수지만)들의 사진이 방안을 장식하기 좋은 포스터 크기

로 들어있고 음반에서 콘서트, 그리고 가수들의 사생활까지 대중음

악에 대한 온갖 정보가 들어있었다. 그 때 <과학동아>도 함께 구독

한다는 조건으로 구독을 해주었다. 학부형 회의에 갔을

때 어떤 엄마가 다가오더니 어발이한테 구독시킨 게 정말

이냐고 물었다. “세상에 를 구독시키는 엄마도 있다

니!” 그런 표정이었다. 거기다 대고 “<과학동아>도 함께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어발이가 <과학동아>를 보는 일은 내가

<과학동아>를 보는 시간만큼도 되는 것 같지 않으므로.

이제 어발이는 10월말까지만 안하기로 했던 자율학습을 아예 학년

말까지 더이상 안하기로 했다. 어발이 아빠는‘남 다하는’ 자율학

습을 안하는 것에 우려와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경쟁

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 있어야지 집에오면 풀어져서

어쩌구 하면서. 결국 담임선생님께 자율학습 유예의 편지를 이번에

는 내가 쓰게 되었다. 자율학습 안한다고 해서 어발이가 오후 5시에

집에 오는 것도 아니다. 저녁먹고 보충수업을 하고 7시 반에 학교를

나오는 것이다. 집에오면 8시가 좀 넘고. 집에 와서 약간의 휴식도

취하고 숙제도 하고 적당한 시간에 잘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오자

마자 “빨리 자라”라고 말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이렇게 공부해도 되나요” 의문제기 절실

그런데 어발이가 집에서 하는 자율학습 계획에 차질이 생긴 일은

엉뚱한 데서 생겼다. 자율학습 안하기로 결정한 지 사흘만에 어발이

는 집에 오자마자 집안의 물난리 청소를 도맡아야 했다. 갑자기 저

녁 8시쯤 낡은 물탱크에서 물이 새기 시작해 2층 서재와 복도에 물

난리가 났고 그 순간 어발이가 와서 할머니를 도와 물 닦아내고 상

수도를 모두 잠그고 뒷치닥거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시

간뺏기고 힘뺏기고 화가 났던지 이집 낡아서 안되겠으니 “당장에

밀어버리고 다시 짓자”고 아빠한테 이야기해야겠다고 그런 모양이

다 (아빠가 매우 능력있다고 생각한 모양!). 생각해보니‘자율학습’

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사회적 진공상태’를 제공하는 공간인 것

같다.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학교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건 눈 딱 감고 공부나 하라고. 그러나 이 아이들이 저녁 5시면 집에

왔던 우리들보다 알아야 할 것을 더 잘 알고 있을까?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나요?”의 물음 대신 우리의 아

이들이 “이렇게 공부해도 되나요”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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