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사진 프로젝트

막달레나 공동체/ 용감한 여성연구소 펴내

 

 

망각보다 무서운 것은 왜곡된 기억이다. 용산역 주변 성매매 집결지였던 한강로 2가를 사람들은 기억한다. 성을 사는 남자와 성을 파는 여자가 있는 곳, 청소년 보호지역, 붉은 조명과 유리진열대 안의 아가씨들. 가부장제의 섹슈얼리티 위계는 그녀들을 서울 안에 있지만 저 멀리 다른 세계에 사는 여자들로 기억하게 했다. 그들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을 한없이 불쌍하고 가엾은 혹은 더럽고 추한 여자들로 둔갑시켜버렸다. 동정과 비난은 또다시 불평등한 위계를 강화시키고 또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이들은 말한다. “ 용산은 성매매 집결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왔던 곳이다”

2009년부터 5-60대 용산 집결지 여성들이 판도라라는 모임을 통해 사라져가는 용산 골목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이 모임은 이들의 구술사를 기록했던 막달레나 공동체 용감한 여성연구소가 사진에 이야기를 붙여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가 출간되었다.

이들의 사진에는 무심하게 찍힌 어두운 거리, 침대가 놓인 방, 새벽이 동터오는 골목, 김치를 담그는 모습, 골목 구석구석 이들과 함께 살아온 화초들, 그리고 한 밤의 피로함을 달래며 즐기던 밤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사진 너머에 이들이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함께 등장한다.

독장사를 하던 은하가 빚에 쪼들려 환각제를 먹고 일하다 염산을 들이키고 죽은 이야기, 은하의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영미가 시너를 뿌리고 자살하고 이어 또 다른 여성이 알콜 중독에 의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던 이야기는 평범한 골목 사진 속에 숨겨져 있었다. “백제 화장터에서는 세 번 모두 관을 운반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들 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거친 삶을 지탱해 왔어야 했다.

놀다가도 그들은 죽을 뻔 했던 이야기를 내놓는다. ‘포주가 주선한 불법 중절 수술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아가씨’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거기서 살아남은 여자들이야“ 하고 울먹이기도 한다.

 

사진은 해석이다. 찍는 사람들의 의도대로 대상은 드러난다. 그래서 이제껏 한강로 2가는 항상 성매매 집결지로만 해석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중년을 넘은 아가씨들에게 이곳은 일터였고, 동료가 있는 곳이고, 삶의 위로, 기쁨 그리고 아픔이 공존하는 곳으로 기억되었다. 따라서 사라져간 용산은 숨겨야할 어떤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절박하게 살아온 여성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판도라 사진들은 2010년에 미국 웨슬리 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전시회를 가졌었다. 전시회에 참여했던 이들은 언급했다 “이 사진들은 미디어가 만든 성 노동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깨고 있다. 이 여성들은 퇴폐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서로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 이후에도 판도라 모임은 지속적으로 사진 작업을 하였고 그것을 추려 이번에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사진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판도라 작가들은 대답한다. ”그저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이해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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