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덴바움 페스티벌 이끄는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씨

“남북 오케스트라 만들 것”

 

광복 70주년 기념해

북측 합창단과 약속한

판문점 평화 음악회 무산

“음악으로 대화 시작해야”

 

 

한국 최초의 교육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한 원형준 린덴바움 뮤직 대표는 남북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원 대표가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 최초의 교육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한 원형준 린덴바움 뮤직 대표는 남북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원 대표가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수많은 악기가 화합해 하모니를 만든다. 음악인들은 다른 소리를 들어가면서 하모니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갈등이 많고 분열된 우리 사회는 이런 음악인의 가치를 필요로 한다. 음악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음악의 힘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음악가가 있다. 남북 갈등도 예외는 아니다. 남북 오케스트라를 꿈꾸는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40)씨의 이야기다. 그는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8년째 열심히 달리고 있다.

미국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 음대와 메니스 음대에서 수학한 원씨는 육영콩쿠르 대상을 비롯해 이화·경향 콩쿠르, 줄리어드 예비학교 콩쿠르, 킹스빌 국제 콩쿠르 등 각종 대회에서 1등 상을 휩쓸었다.

10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한 그는 이후 KBS 교향악단과 홍콩 PanAsia 필하모닉, 서울시 청소년 오케스트라, Marrowstone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Massapequa 필하모닉, 줄리어드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다.

촉망받는 연주자로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그는 2009년 린덴바움 뮤직 회사(이하 린덴바움)를 설립하고, 한국 최초의 교육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린덴바움은 음악을 통해 사회 속에 존재하는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꿈꾼다.

그런 생각은 ‘원 피플, 원 하모니’라는 모토에 깊게 담겨 있다. 음악으로 배우는 배려와 교감 그리고 소통이 사람들 간의 화합과 이해를 끌어내는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뉴욕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 사를르 뒤투아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린덴바움이 기획한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했다.

2010년에는 유럽연합과 주한 벨기에,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대사관들과 함께 ‘유로아시아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을 주관했다. 다양한 문화권의 젊은이들이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자리였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디디에 포스킨과 쿼츠 앙상블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린덴바움이 지난해 개최한 평화 음악회는 조금 더 특별하다. 2015년 8월 15일 광복 70해를 맞이하는 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측 연합합창단과의 연주를 기획했다. 13일에는 연주회 성공을 기원하며 서울 독립문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과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했다.

그러나 15일 공연은 시작 시각인 오후 7시에 결국 취소됐다. 북한의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로 남북 긴장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통일대교에서 2시간을 기다린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민통선 마을 석장리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아리랑 연주를 마쳤다.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지만, 남북 연합 오케스트라 구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원씨는 지속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남북의 안정적 관계 형성을 기대하고 있다. ‘음악의 힘’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원 대표가 진행한 남북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는 ‘9 AT 38’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중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원 대표가 진행한 남북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는 ‘9 AT 38’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중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곧 광복절이다. 작년 이맘때는 북측 합창단과의 연주를 기다렸다.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2시간을 기다렸는데 유엔군사령부가 공식적으로 남북 판문점 평화 음악회가 취소됐다고 알려왔다. 사실은 그때 하도 변수가 많아서 판문점에서 못하면 차선으로 통일대교에서 연주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음향감독이 더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해서 간 곳이 민통선에 있는 석장리 미술관이다. 알고 보니 대북 확성기가 있던 곳이더라. 당시 목함지뢰 사건이 터져서 우리 정부에서 대북 확성기 심리전을 할 때인데 우리는 옛 확성기 앞에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우리의 진심이, 우리의 음악이 북한에 전달되길 바랐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음악회가 열린 적 있나.

“역사상 그곳에서 음악회가 열린 적은 없다. 마이클 잭슨의 버킷리스트가 거기였다. 마이클 잭슨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판문점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했는데 못 했다. U2라는 세계적인 그룹은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는데 판문점에서 연주하면 오겠다고 한 적도 있다.”

-무산돼서 아쉽다.

“북한은 그때 내려왔다. 우리만 못 올라갔다. 나중에 통일부에서 확인했는데 북한도 20년 만에 판문점에 내려온 거다. 한번 상상해봐라.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아리랑을 연주하면 그 사람들이 불렀을 거다. 아쉽다. 딱 1년이 지났다.”

-지난 8년간 남북이 음악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많은 시도를 했다.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통일부에서 승인해준 거 같다. 연주는 비정치적인 일이고, 어떤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 음악으로 대화하는 아주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좋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안 됐다. 정치적인 상황이 항상 변수였다.”

-음악이 해낼 수 있을까.

“부부가 싸워서 헤어졌는데 갑자기 한쪽이 다시 합치자고 하거나 제삼자가 합치게 하려고 한다고 치자. 서로가 입은 상처나 싸운 이유를 솔직하게 극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다시 합칠 수 있을까? 음악은 헤어진 부부를 합치게 하는 역할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서로 공감하게 하는 역할이다. 음악은 인종과 종교, 국적이 달라도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다. 그게 대화를 시작하는 첫 스텝이 아닐까. 남북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것, 그게 음악과 예술인의 역할이 아닐까.”

린덴바움의 남북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는 ‘9 AT 38’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중이다. 원씨가 삼팔선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는 소식이 뉴욕타임스에 소개됐고, 뉴욕의 한 다큐멘터리 팀이 그 과정을 담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프로듀서와 감독이 한국에 와서 기획부터 준비까지 모든 과정을 찍었다. 올 하반기에 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벌 등을 통해 개봉할 예정이다.

원씨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남북 화해로 연결된 것은 이산가족의 영향도 있다. 그가 8살 때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원경수 전 코리아헤럴드 사장은 황해도 출신이고, 증조할머니의 산소는 개성에 있다. 가족들은 제사 때 증조할머니를 위한 술잔을 잊지 않는다. 원씨는 “할아버지도 증조할머니 묘에 가보지 못하셨다. 통일되지 않는다면 나를 포함해 우리 후손들도 못 가본다. 그게 이산가족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7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아버지가 외국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사오신 엘피판 덕분에 바이올린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선율만은 기억했다고. 그가 제일 많이 들었던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광복 70주년 평화 음악회. ⓒ뉴시스ㆍ여성신문
광복 70주년 평화 음악회. ⓒ뉴시스ㆍ여성신문

-바이올린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7살 때 옆집에서 잔치가 열렸는데 동네 누나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거다. 엘피판에서 듣던 소리가 저 소리였구나 알게 됐다. 그때 바이올린을 처음 봤다. 호기심에 부모님께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했다. 그 누나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양고은 경희대 음대 교수다.”

-평범한 연주자의 길을 걷다가 방향을 바꾼 이유는.

“유학 시절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 환율이 너무 비싸니까 어쩔 수 없이 휴학하게 되면서 방황을 많이 했다. 음악이란 무엇일까, 돈이 없으면 할 수도 없는데, 전쟁이라도 나면 음악은 필요한가, 우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인가…. 그게 첫 번째 방황이었다. 두 번째 방황은 서른살에 입대했을 때다.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적응이 힘들기도 했지만, 바이올린을 할 수 없는 것도 힘들었다. 어깨 연골이 찢어져 1년 만에 의병 제대했다. 이런 방황들이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줬다.”

-어떻게 극복했나.

“2007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퍼시픽 뮤직페스티벌에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남긴 ‘젊은 연주자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이 일을 한다’는 글을 읽고 열정이 생겼다. 한국에도 이런 페스티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린덴바움 페스티벌을 만들었다. 만약 방황이 없었다면 순탄하게 연주하며 스탠다드한 음악가의 길을 걸었을 거다. 음악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음악이 우리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이 생긴 중요한 계기는 방황에서 시작됐다.”

-올해는 제주도에서 린덴바움 페스티벌을 연다.

“8월 6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은 수석 연주자 13명이 제주도에 있는 학생들과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는 음악교육 축제다. 음악 얘기만 하지는 않는다. 교육 외에도 하버드 재학생들과 로버트 오그번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한영용 한식요리 연구가 등이 참여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 페스티벌을 통해서 씨앗을 뿌리는 거다.”

-하버드 재학생을 섭외한 이유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오케스트라는 하버드 레드클리프 오케스트라다.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등 기성 오케스트라보다 더 오래됐다. 그런데 하버드에는 음대가 없다. 음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재학생들이 거의 전문가처럼 연주하고 2년에 한 번씩 전 세계 투어를 한다. 최고의 리더를 키우는 하버드는 공부는 기본이고 음악 활동도 프로 수준이다. 우리의 교육현실과 비교하면 충격적인 일이다. 두 사람이 제주에 와서 예술과 학업을 병행하는 얘기를 할 거다. 한번 들어보자 이거다.”

-어떤 페스티벌로 만들고 싶은가.

“나의 비전은 음악으로 남북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음악의 가치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음악이 의식주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나는 그걸 전달하고 싶다. 단순히 연주하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서 음악으로 한반도가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 씨앗이 린덴바움 페스티벌이다.”

-청년 음악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운명적으로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그게 7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 사실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거다. 음악을 하든 과학을 전공하든 뭘 하든지 간에 본인들의 전공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자체가 남북 화합의 한 역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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