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딸, 총을 들다』

일제와 맞서 싸운

24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곧 광복절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장한 뜻을 품었던 이들이 많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기억되지 않고 있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대갓집 마님에서 신여성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24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유관순 누나’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책이랄까.

김락은 대갓집 안주인이었다. 김락의 시아버지는 영남 유림의 거두 출신으로 1910년 8월 한일병탄이 일어나자 “식민지 땅에서 무릎 꿇고 살 수 없다”며 단식했고, 결국 24일 만에 순국했다. 친정 큰오빠를 비롯한 고성 이씨 30여 가구는 만주로 이주를 단행했다. 김락은 3·1운동 이후 지방으로 이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의 고문으로 두 눈을 잃는다. 친정과 시댁이 합쳐 26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지만, 김락의 존재는 2000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여자 독립군 안옥윤(전지현 분)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도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남자현은 1926년 4월 초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에 가담했고, 1933년 봄에는 관동군사령관 겸 일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의 암살에 나서기도 한다.

그는 체포 당시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의병에 가담했다가 전사한 남편의 군복을 껴입고 있었다. 그의 나이 61세 때였다. 두 암살이 모두 미수에 그쳤지만, 그의 뜻을 장하게 여긴 하얼빈 사회 중국인 지사들은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도 의사라 불릴만한 인물이다. 그는 평소에 아들에게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조마리아는 아들 때문에 나라를 생각하게 된 사람이 아니다. 이미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은가락지와 은투호(노리개) 등을 쾌척했다.

아들의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상해로 망명했고, 1926년 7월부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장한 뜻을 기려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지만, 아들 안중근의 묘소가 그렇듯 묘소의 소재가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 여군의 효시가 된 인물은 1940년 9월 광복군 총사령부 대원 30명 중 속했던 오광심, 지복영, 조순옥, 김정숙이다. 그중 ‘여성 광복군의 맏언니’였던 오광심은 1930년대부터 청년공작대 등 항일무장조직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남편 김학규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용정 동명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 독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교직을 그만두었다. 오광심은 김학규의 아내이자 참모로 평생 동고동락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해방 뒤에도 상해에 남은 오광심은 3만여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안전한 귀국을 위해 힘썼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에는 이외에도 이화림, 정정화, 동풍신, 박자혜, 조신성, 김알렉산드리아 등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들, 그러나 조국 광복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쳤던 여성들의 면면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세상은 여성들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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