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한 진 세버그(Jean Seberg)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한 진 세버그(Jean Seberg) ⓒ영화 '네 멋대로 해라' 중

오토 프레밍거의 <슬픔이여 안녕>(1958)과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의 주인공으로 영화사에 영원히 이름을 새긴 배우가 있다. 진 세버그(Jean Seberg). 1938년 미국 아이오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불과 18살 나이에 오토 프레밍거의 <잔 다르크>(1957)의 타이틀 롤을 맡아 할리우드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버그는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그 시대에는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 아니었겠는가-흑인 인권단체 NAACP라든가 미국 원주민 인권 단체 등 다양한 단체에 후원금을 냈다. 그중에는 급진적 흑인 인권 단체 블랙 팬더(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는 이들을 “미국의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다”라고 불렀다)를 후원한 돈 1만500달러도 포함되었다. 후버의 지휘 아래 대통령부터 각종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을 캐내는데 열중했고 특히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집요하게 감시했던 FBI의 레이더에 진 세버그가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FBI는 세버그와 가리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했고, 1970년 그녀의 임신 소식을 엿듣게 된다. 

“할리우드 가십 칼럼니스트들을 통해 진 세버그의 아이 아버지가 (남편인 소설가 로맹 가리가 아니라) 블랙 팬더 당원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작업에 대한 국장의 허가가 필요하다. 진 세버그의 곤경이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그녀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그녀의 이미지를 저급하게 깎아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라는 메모가 후버에게 직접 제출되었다. 후버는 승인했고, ‘익명의 제보자’는 ‘LA 타임스’의 가십 칼럼니스트 조이스 하버에게 이 ‘정보’를 넌지시 건넸다. 

‘잘생긴 유럽인과 결혼한 미스 A의 스캔들’이 ‘LA 타임스’에 실렸고, 누가 봐도 미스 A가 진 세버그라는 사실을 눈치못챌 수가 없었다. 곧 ‘뉴스위크’에서 이 기사를 받아쓰며 진 세버그라는 실명을 밝혔다. 미국은 발칵 뒤집어졌고, 로맹 가리는 격노했으며 진 세버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버그는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여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그녀는 조산했고, 갓 태어난 딸은 이틀 만에 숨을 거두었다. 세버그는 아이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몰려든 기자 앞에서 관의 뚜껑을 열어 아이의 피부색이 ‘하얗다’는 것을 공개했다.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의 결혼생활은 끝장났고, 그녀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FBI의 감시와 스토킹에 시달리며 점점 더 알콜중독에 빠져들었으며, 매해 아이의 기일마다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 차 안에서 진정제를 다량 복용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겨우 마흔 살에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여성이 어떤 식으로 보복 당하는가에 관한 아주 극단적인 예다. ‘카더라’ 통신을 활용한 악의적인 모략으로 커리어를 망치고 여성성을 모욕함으로써, 그녀는 ‘본보기’로 내세워졌다. 냉전 시대, 미국인의 ‘내부 단결’을 위하여 그녀의 사생활은 파헤쳐지고 조작되었으며 너무나도 부당하게 희생당했다. 

그리고 2016년 한국에서는,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와 여성혐오에 지쳐 남성들의 발언을 그대로 뒤집어 받아치기 시작한 집단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여성 혐오 관련 내용을 올리던 페이스북의 메갈리아 페이지가 연이어 ‘커뮤니티 규칙 위반’을 이유로 삭제되면서, 그 이용자들은 소송을 결심하게 되었고, 소송 비용을 모금하기 위한 티셔츠를 판매했다. 그런데 소송 취지에 공감하여 티셔츠를 사고 지지발언을 했던 성우는 이미 목소리 녹음을 끝낸 게임 배역에서 삭제되었고, 웹툰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별점 테러’를 당하고 악플에 시달리며 연재 플랫폼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한 뮤지션은 자신의 지지발언을 철회하며 사과문을 게재해야 했다. 항의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의 ‘몰카’는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 속속들이 올라오며 언어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을 때 표현의 자유는 용인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개념마저 공격받고 있다. 게다가 여기서 ‘문제’가 되는 표현의 자유는 다름 아닌 ‘여성혐오를 멈추라, 여성을 더 이상 성적대상물로 인터넷 스포츠화하지 마라’라는 요구다. 지금 메갈리아를 향한, 혹은 여성혐오 중단 요구를 향한 일부 남성들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지켜보며 의아해지는 건, 여성들의 이런 목소리가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들이 넘어서야 하고 철폐해야 할 장애물은 아직도 너무 많다. 여성혐오를 멈추라고, 페미니즘을 다시 한 번 진지한 현재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조차 억압당하고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현실을 살아가며 날마다 생각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37년 전 부당하게 희생당한 진 세버그의 출세작 제목을 계속 떠올린다. 네 멋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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