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페미니즘 티셔츠가 일으킨 후폭풍

김자연씨 교체부터 ‘#넥슨_보이콧’ 운동까지

22, 25일 넥슨 사옥 앞서 항의 시위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 외치며 반발

 

넥슨 사옥 앞에 시위 참가자들이 세워둔 판넬.
넥슨 사옥 앞에 시위 참가자들이 세워둔 판넬.

넥슨코리아는 지난 19일 ‘메갈리아’에서 만든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로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역을 맡은 성우 김자연씨를 교체했다. 이후 네티즌들은 넥슨의 결정에 항의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처음 ‘#김자연 성우를_지지합니다’ ‘#넥슨_보이콧’으로 시작한 해시태그 운동은 웹툰작가, 유명인, 일반인들로 점차 범위가 확장됐다. 이와함께 네티즌들은 22일과 25일 경기 성남시 넥슨코리아 앞에서 항의시위를 열었다. 이 시위에는 각각 100여명, 280여명이 참석했다.

‘메갈리아4’는 페이스북 코리아가 여성혐오 페이지 제재에는 관대한 반면 메갈리아 페이지를 잇달아 삭제한 것을 편파적인 대처라고 판단하고 소송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소송에 필요한 후원금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했고, 대가로 티셔츠나 뱃지를 배송했다. 김씨는 지난 18일 메갈리아4에서 지급받은 티셔츠를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했고,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며 항의가 빗발쳤다. 넥슨은 이 사태에 대해 “성우에게 정중히 요청해 결국 목소리 삭제를 결정했다”며 “비용은 이미 지급이 완료된 상태”라고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시위참가자 중 한 명이 판넬을 들고 있다. ‘넥슨이 벗겨놔서 제가 입혔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독자 제공
시위참가자 중 한 명이 판넬을 들고 있다. ‘넥슨이 벗겨놔서 제가 입혔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독자 제공

하지만 네티즌들은 넥슨의 결정이 ‘부당한 성우 교체’라며 반발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게임 내 캐릭터의 성 상품화도 비판했다. 김씨가 성우를 맡은 게임 ‘클로저스’가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한 게임이라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분노한 여성들은 넥슨 사옥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며 넥슨 게임 내 여성캐릭터들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고 김씨의 교체에도 항의했다. 마스크를 쓴 여성들은 ‘목소리를 지워도 페미니즘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차별 기업 여성혐오 게임 넥슨, 불매한다’ ‘왕자 싫다는 티셔츠에 부당교체 웬말이냐’ 등의 문구가 적힌 판넬을 들며 시위에 참여했다. 한 참가자는 논란이 된 게임 ‘클로저스’에 13세 캐릭터로 등장하는 ‘레비아’의 옷을 ‘메갈리아4’의 페미니즘 티셔츠로 교체한 판넬을 들어 넥슨코리아의 미성년자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넥슨의 성우 교체 결정에 대한 분노는 웹툰 작가와 같은 문화업계 종사자들의 해시태그 운동으로 번졌다. 그들은 트위터를 통해 넥슨 보이콧 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에 분노한 웹툰 독자들이 예스컷운동(작품 콘텐츠 규제)을 시작해 논란이 확산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김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메갈리아 회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에 트위터에선 ‘#내가_메갈이다’ 해시태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 A씨는 “성우의 부당한 교체 뿐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의 성 상품화, 페미니즘 티셔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낙인을 바꾸기 위해 시위에 참가했다. 논란을 야기한 넥슨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시위를 도촬(도둑 촬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행위가 범죄인데도 이런 행위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B씨는 “단지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교체됐다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라며 “넥슨의 성우 부당교체는 지금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 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한 장의 페미니즘 티셔츠가 촉발한 이번 논란은 넥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페미니즘 혐오와 성차별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거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