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에 내딘 걸음, 문제의 해결 아닌 시작

~6-1.jpg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이 발표된 이후 뒤늦게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신청을

하는 이산가족들. 이들이 8.15 이후에도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배려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사진 민원기 기자>

7백67만 이산가족들 중 과연 몇 사람이 진정 상봉을 원하며, 또 재가족으로서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관계를 원할까. 이산가족의 역사적 상봉을 목전에 두고 반가움과 감격에 이어 떠오르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산가족문제와 관련해선 끈끈한 민족정서만 앞설 뿐 해결과 대안을 위해 참고할 만한 조사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분단 상처의 치유라기보다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북측에서 이번에 보내온 이산가족 명단은 주로 자진월북자로 구성돼 있는 반면, 남측 명단은 ‘빨갱이’이가 된 월북가족 때문에 오랜 세월을 피해의식 속에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김귀옥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해 출간한 저서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에서 월남인에겐 실향의 경험 자체가 정치적 문제 및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어 있어 고향을 그리는 것은 머리속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는 실향민과 그에 얽힌 이산가족의 우선 과제로 ▲조사 연구가 전무하다시피한 월남 후 해외 이주자들의 규모와 주거지, 그들간의 연계망, 재북 이산가족과의 연락상황과 상봉실태 관련한 구체적인 연구 ▲불문에 붙여졌던 월북인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 등을 들고 있다. 분단철거와 통일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하지 않은 채 섣불리 이산가족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남북 이산가족들에게 또다른 질곡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견해다.

한편, 이번 이산가족 명단 몇몇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원하지 않았던 가족해체의 돌발상황에서 새로 가정을 꾸민 경우도 그 해결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특히 북한은 체제 정착을 위해 결혼이 강력히 권장됐고, 남한은 유교적 전통에 의해 여성의 재혼이 편치 않게 받아들여지던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이현숙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는 통독의 경우 경제문제를 비롯한 동서독간 갈등문제 해결을 위해 주마다 상담소가 성업중이라며, 한국의 경우 분단역사 이면에 처절한 전쟁이 있었던 만큼 관련법과 제도 등 한층 더 갈등해결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관련 전문가들은 통독의 경우 흡수통일이기에 이산가족과 관련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고 서독민법을 일방적으로 적용했지만, 한반도의 경우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이산가족 첫 상봉 후 가족관련 상담들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며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상담사례들을 유형별로 정리 연구해 법무부와 긴밀한 연계 속에 효과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전한다.

현재 한반도의 이산가족 문제는 대만이나 독일의 경우를 참조할 수는 있지만 기준으로 삼기엔 상당히 차별화돼 있다. 그래서 해방직후, 6.25 당시, 정전과정, 납북 등 이산시기에 따른 단계적 연구도 절실하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이 한차례 지나간 후 가장 먼저 대두될 법적 문제는 호적제도 복구와 중혼, 상속에 관한 부분.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이산가족들 중에는 상당수가 사망신고를 했는데, 생존사실 증명이 가능하다면 이 경우는 비교적 손쉽게 사망취소 신고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중혼의 경우는 그에 비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혼도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호적 상에는 잔류자로 남아 있으나 부재신고를 하고서 재혼한 경우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혼이 인정되면 현행 법상으로는 전·후 혼중 한 경우만 인정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전혼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거나 중혼상태를 유지하되 전혼과의 관계에서는 상속이나 부양청구를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혼인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상속은 좀더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먼저 북한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상속할 것은 가재도구 수준이지만, 남한은 많든 적든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을 상속할 수 있어 상속범위가 차이나며, 화폐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기는 상속액 차이가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가족에게 상속권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상속권을 인정한다면 ‘남한과 동등하게 할 것인가? 제한을 둘 것인가?’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상속대상과 상속가능액을 일정범위로 제한하여 상속을 인정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부동산을 상속재산 범위서 제외하고 대륙주민의 상속총액을 일정금액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고등법원 이종석 판사는 “중혼의 경우 70세 이상의 고령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법에 의한 일괄적용보다는 당사자의 판단에 근거해 해결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박이 은경·김유 혜원 기자]

pleun@womennews.co.kr

dasom@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