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인과관계 있다면

업무상 재해 인정

‘급성심근경색 추정’ 소견

산재 진행에 유리해

근로자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도착 전에 사망한 경우 사체검안서에 ‘사인 미상’이나 ‘사인 불상’ 또는 ‘심장(심폐)정지’ 등으로 기재된다. 이는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근로자가 돌연사했으나 부검을 하지 않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서상 돌연사가 발생해 부검하는 것을 사람을 ‘두 번 죽인다’고 하며 터부시하는 의식이 강해 사인미상인 사건이 되고 산재 진행 시 어려움이 있게 된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즉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당해 사망이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산재보상 주체인 근로복지공단은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는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사망 당시 정황 등을 참작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조사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부검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에 있어야 했다.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간의 인과관계에 관해선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하므로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수행 중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사인이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업무에 기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할 수 없다(2003. 12. 28. 선고 2003두8449 판결; 2000. 3. 23. 선고 2000두130 판결; 1999. 4. 23. 선고 97누16459 판결 등)며, 업무상 재해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대법원(2004. 3. 26. 선고 2003두12844 판결)은 “사체검안서에 사인이 미상으로 기재되어 있고 부검도 시행되지 아니하여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과로가 망인의 고혈압 등의 기존질환을 통상의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면서 심근경색 또는 심장마비가 유발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부분의 대법원 판례는 돌연사했으나 부검을 실시하지 않아 사인미상인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2010. 3. 25. 선고 2010두733 판결 등).

구체적 사례로는 당뇨병과 고지혈증을 앓고 있던 망인이 근무시간 중 정상적인 퇴근차량 운행준비를 하다가 화장실 내에서 쓰러져 사망한 경우(2010. 3. 25. 선고 2010두733 판결), 근로자가 마라톤 동호회의 정기연습에 참여했다가 갑자기 사망한 경우(2009. 5. 14. 선고 2009두58 판결), 근로자가 연장근무를 마치고 통근버스를 이용하여 퇴근하다가 버스 안에서 발작을 일으켜 사망한 경우(2009. 3. 26. 선고 2009두164 판결), 46세의 중년 여성으로서 고도 고혈압 등의 기존질환을 가진 근로자가 과중한 업무에 종사하가다 퇴근길에 쓰러져 사망한 경우(2004. 9. 3. 선고 2003두12912 판결), 건설사 A/S부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 갑자기 쓰러진 경우(2002. 6. 14. 선고 2002두3287 판결), 평소에 건강상 특별한 지병이 없던 마을버스 기사가 새벽에 흉부통증을 호소하다가 사망한 경우(2001. 4. 13. 선고 2000두9922 판결) 등이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도 공사현장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사망한 상태로 동료에게 발견된 경우, 마트계산원으로 업무종료 후 사업주가 주관한 연말회식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사망한 경우, 경련성 협심증이 있는 건설현장 소장이 현장사무실 앞에서 쓰러져 사망한 경우, 경영지원팀장이 출장업무를 끝내고 숙소에서 거래처 직원과 음주 후 다음날 객실에서 사망한 경우, 병원 미화반장이 병원 내 폐기물을 창고로 옮기고 지하 1층 휴게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사망한 경우 등은 사인미상 사건이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심사사례가 있다.

업무상 재해의 판단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봐야 한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10두733 판결 등), 그리고 사인미상인 돌연사의 대부분은 심장이 원인이므로 의학적으로 급성심장사라 하며, 돌연사 80%가 산재보험법령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열거되고 있는 ‘급성심근경색’이라는 통계 기사가 있다. 따라서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전회에서 기술한 과로사 인정기준에 객관적으로 부합하면 ‘사인 미상’ 사건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실무적으로는 사인미상 사건에서 ‘급성심근경색 추정’ 소견이 있는 경우 산재 진행에 유리해진다. 그리고 사인미상이 산재로 인정받는 데는 비록 쓰러진 장소가 사업장 밖이고 업무수행 중 발병한 것이 아니어도 업무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두6811 판결). 그러나 평소 상당히 심한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건강을 돌보지 아니하고 과음 후 발병한 경우 등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4두7030 판결).

법학박·공인노무사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과 가천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세명공인노무사 대표로서 ‘과로사 산재 전문 지원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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