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양성평등 모니터링

성 역할 고정관념 조장

남성 의존 성향 부각 등

성차별적 장면 여전해

지난 6월 5일 방영된 SBS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의 한 장면. 대가족의 최고 연장자 유종철(이순재)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첫째아들 유민호(노주현)에게 “여자는 그저 예쁘다, 예쁘다 해야 좋아해”라고 얘기했다. 여성은 예쁘다고만 하면 다 괜찮다고 여기는 존재로 표현한 여성비하 발언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잘못 봤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드라마를 볼 때면 씁쓸하기 마련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억울한(?) 취급을 받으면 더 그렇다.

실제로 드라마 상에서 성 차별적 내용이 성 평등적 내용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YWCA 양성평등 미디어 모니터회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공동 협력해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드라마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했다. 6월 1일부터 7일까지 KBS1, KBS2, MBC, SBS, JTBC, tvN 등의 22개 드라마 68편을 모니터링한 이번 조사는 양성평등 모니터링 도구 표준화 제안에 따라 표준화된 체크리스트를 활용했다.

‘방송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내용을 다루는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부각하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 성희롱, 성폭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부부간의 관계를 묘사할 때,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게 복종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가’ ‘미망인, 미스, 올드미스, 여사, 과부, 여류, 출가외인 등 가부장적이거나 성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는가’ 등이 평가 기준이다.

 

MBC TV ‘가화만사성’ ⓒ뉴시스ㆍ여성신문
MBC TV ‘가화만사성’ ⓒ뉴시스ㆍ여성신문

주인공의 직업군 분석이 흥미롭다. 22개 드라마의 주연과 조연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 대리 이상의 중간관리자와 고위직 중 남성은 19명, 여성은 9명으로 남성이 훨씬 많았다. 여자 주인공 중 사장·대표 역할은 하나도 없었고, 남자 주인공은 5명이 있었다. 그 밖에도 여성은 판매사원, 아르바이트, 주부, 공장노동자 등의 비전문직으로 그려지고, 남성은 자영업자, 의사, 장관, 국회의원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으로 묘사됐다.

모니터링 결과 성 평등적 내용은 20건, 성 차별적 내용은 49건으로 성 차별적 내용이 성 평등적 내용보다 2배 이상 많이 발견됐다. 성 차별적 내용 중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남성 의존성향을 강조하는 내용이 44.4%,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내용이 31.1%로 가장 많았다. 여성이 갈등유발자로 등장하는 비율이 높았고, 갈등 해결자는 여성이 17명(41.5%), 남성이 24명(58.5%)으로 남성의 비율이 높았다.

‘몬스터’(MBC)는 여성이 능력이 아닌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사업을 이끌어가는 장면을 그려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21회에서 100억이 넘는 신약의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개발자에게 도도그룹을 소개하고 계약을 맺고자 찾아간 자리에서 대기업 총수의 딸인 도신영(조보아)이 술을 권하거나 윙크를 하며 개발자의 호감을 사려는 장면이 있었다. 여자들이 사업할 때 미인계를 쓴다는 왜곡된 모습을 그리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가화만사성’(MBC)은 가정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남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식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29회에서 어머니인 배숙녀(원미경)가 하룻밤 실수로 혼전 임신을 하게 된 딸의 상대(이강민)에게 “내 딸 어떻게 할 거냐고”라며 음식에 머리를 처박으며 때리고 화풀이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남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성결정권에 있어 여자는 수동적으로 남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식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MBC 아침드라마 ‘좋은 사람’ ⓒ방송 캡쳐
MBC 아침드라마 ‘좋은 사람’ ⓒ방송 캡쳐

‘좋은 사람’(MBC)은 주인공 윤정원(우희진)이 집에서 앞치마 입은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가사 노동은 마치 며느리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시 시작해’(MBC)는 12회분에서 이태성(전노민)이 아내 정미란(박준금)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정신 차려, 이 여편네야! 애미라는 게 집을 나가네 어쩌네 딸래미 간수 하나 못해 놓고 어디서 큰소리야!”라고 했다. 부인을 여편네 등의 표현으로 하대하고 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엄마의 책임으로 표현해 빈축을 샀다.

‘별난 가족’(KBS1) 23회에서는 동네 이장이 심순애(전미선)에게 관심을 보이자 시어머니인 박복해(반효정)가 “이장이 우리 집 문지방 안 밟게 하려면 얼른 재가해”라고 말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다른 남성으로부터의 원치 않는 관심을 다른 남성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남성 의존적 존재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래, 그런 거야’(SBS) 34회 방송에서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시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는 며느리 한혜경(김혜숙)에 대해 시어머니 김숙자(강부자)와 큰아들 유세현(조한선)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성을 운전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대할 뿐 아니라 성인으로서의 자기 의사결정권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렸다는 평이다.

‘백희가 돌아왔다’(SBS)는 성적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단어와 행동의 무분별 사용이 지적됐다. 6월 6일 첫 방송에서 중년여성 승객이 여객선 운행을 마친 우범룡(김성오)의 엉덩이를 잡으며 “오빠 수고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불쾌해하는 우범룡의 특정 부분을 노골적으로 내려다보며 “나 오빠 팬이잖아”라고 말하는 부분은 대사와 시선 처리 모두 선정적이라는 지적이다.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 ⓒ방송 캡쳐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 ⓒ방송 캡쳐

2회 방송분에서는 홍두식(인교진)이 학교 선생님에게 복분자를 선물하며 “우리 집은 이게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아 가지고 가정의 화목이 유지가 되고”라고 말하고, 카메라 앵글이 남성의 생식기 부분을 비추며 “스쳐도 한 방으로다가…. 보름이 밑으로 형제자매 세 놈이 더 있는디”라며 복분자의 정력 강화 효능을 설명했다. 대사와 영상을 통해 성적이미지를 지나치게 강조한 편집이다.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드라마에서 여성 비하적 언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볼 때,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높은 드라마 프로그램에서 성평등 의식을 담아내려는 방송사와 제작진의 꾸준한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예리 서울YWCA 여성참여팀 부장은 “제작 현장의 변화가 많이 필요하다. 여전히 성평등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제작자들에게 보고서를 보내면 ‘이런 거 저런 거 다 빼면 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시청률을 인식한 극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해 변화가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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