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여성가족재단에서 관계자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와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추모 공간에 있던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 잇을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5월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여성가족재단에서 관계자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와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추모 공간에 있던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 잇을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5월 17일 발생한 ‘여성살해’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수 만개의 포스트잇!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된 추모의 물결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추모하러 나온 사람들은 사건 당일 오후부터 포스트잇에 여성혐오 범죄에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며 조용하고 엄숙하게 자신의 마음을 적어갔다. 한 장, 한 장 모여 2만장을 넘는 포스트잇의 물결!

강남역에 갔을 때 나의 눈과 가슴에 들어온 한 포스트 잇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자로 사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을 때는요. 앞으로도 불편하고 무섭겠지요. 하지만 이 곳에서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설치고 떠들겠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더 이상 약자이지 않도록. 여자라서 자랑스럽습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무참히 살해된 사건을 접하며 애도와 분노로 참담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새로운 힘을 내게 한 고마운 글이었다. 나는 그 글을 쓴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서로 강하게 연결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포스트잇들도 깊은 애도와 추모의 마음이 묻어나 있어 감동적이이고 경건하기까지 했다.

이 중 일부는 경향신문사에서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어떤 애도의 싸움의 기록』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추모’였고, 다음으로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자조와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한다. 특히 자기반성을 하는 남성들의 글도 많이 있었다 한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있던 포스트잇은 5월 23일 비 예보로 훼손을 우려해 철거해서 서초구청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과 서울시 시민청으로 이전됐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부산, 대전, 광주, 전주, 부천 등 9개 지역으로부터 올라온 자료도 함께 전시하고 이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일이 한 장씩 사진을 찍고 모든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해서 유형화하는 지난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 진행된다고 하니 그 결과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온라인에서라도 역사적인 기록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니 정말 잘된 일이다. 이렇게 강남역 10번 출구에 표출된 사람들의 마음이 기록으로 온전하게 보존된다면 이후 이 자료를 기반으로 많은 일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가공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성과 상징성이 넘치는 글들이지만, 각종 연구물이나 교육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후대에게도 2016년 당시 한국 상황과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을 통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번 포스트잇의 물결은 그동안 활동가나 평론가, 학자, 방송인 등에 국한됐던 ‘생각나눔’을 넘어 남녀노소 일반시민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공유하며 의견을 모아가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성찰적인 돌아보기에 이어질 다양한 실천과 변화를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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