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

협동조합 준비기간 3년

여성 돌봄노동자 50명

모두 사업주이자 노동자

‘전문직업인’ 자부심 커지고

소비자 신뢰 얻어 수요 증가

 

부천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을 만든 김영숙, 김숙환, 임영란씨(왼쪽부터). 이들은 협동조합 이사들로 지난 3년여간 협동조합 창립 준비와 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부천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을 만든 김영숙, 김숙환, 임영란씨(왼쪽부터). 이들은 협동조합 이사들로 지난 3년여간 협동조합 창립 준비와 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7년간 가사도우미로 일하다보니 새로운 집에 가면 어디가 가장 지저분한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눈에 딱 보여요. 예전에는 지저분한 집을 배정받으면 한숨이 나왔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런 집에 가는게 신이 나는거에요. 속으로 ‘내가 부천YWCA 협동조합의 노하우를 보여줘야지’ 생각하게 된다니까요.”

부천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에서 살림도우미로 일하는 김영숙(59)씨는 1년 전과 지금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산모돌보미로 일하며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숙환(59)씨도 “과거엔 사무실에서 가정을 매칭해주면 가서 주어진 일만 했다면, 지금은 더 적극적으로 찾아서 일하고 전문성을 갖췄다는 자부심이 들다보니 태도도 당당해졌다. 노동자이면서 사업주이다보니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살림도우미 회장인 임영란(51)씨는 “내가 협동조합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전에는 힘들면 다른 집으로 바꿔달라고 했을 텐데 이제는 내가 안하면 동료가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견디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부천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의 지난 1년은 돌봄노동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노동을 하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가사돌보미, 산후돌보미들이 “우리는 전문직업인”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가정관리·간병·육아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가사노동자가 30만명에 이르지만, 계약서나 최소한의 원칙도 없이 일하고 있다. 정부가 ‘법적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뿔뿔히 흩어져 각자 연계받은 가정에서 일해야 하는 가사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협동조합 이사장과 이사로서 과외 업무를 해야한다는 것은 보통 노력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50명의 여성 돌봄노동자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약 3년간의 준비를 거쳐 지난해 5월 14일 협동조합 창립식을 열었고 1년간 희망을 일궜다.

돌봄과살림 협동조합은 생산자(노동자)와 실무자, 후원자(YWCA)가 모인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자 조합원에게 배당할 수 있는 일반협동조합이다. 공익성을 앞세운 사회적협동조합을 하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지만 노동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사실 1만2000명의 돌봄노동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YWCA연합회(이하 YWCA) 입장에서 협동조합 설립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들의 회비가 협동조합 운영비로 옮겨가 재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사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워온 YWCA의 역사를 보면 협동조합은 자연스런 결론이기도 하다. YWCA는 1966년부터 ‘식모’ 대신 ‘파출부’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사노동을 체계적인 일자리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돌봄과살림협동조합 조합원이자 살림도우미인 김영숙씨가 17년간의 노하우를 살려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부천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 조합원이자 살림도우미인 김영숙씨가 17년간의 노하우를 살려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부천YWCA

무료직업소개소를 열어 가사노동자의 구인구직 연계를 해왔고, 2000년대 들어 저평가된 가사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가사노동자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가사노동자 현실이 알려졌고,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이 본격화됐다. 2010년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가사노동자 보호입법이 발의되고,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전세계 가사노동자들에게 노동권과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가사노동자 보호협약’ 채택하면서 논의에 힘이 실렸다. YWCA는 돌봄노동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협동조합’을 택했다. 시범 지역으로 부천과 성남을 정한 후 송록희씨를 부천YWCA 사무총장으로 내려보냈다.

협동조합 창립이라는 미션을 받은 송 사무총장은 이화여대 재학 시절부터 오랜 기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대학 1학년이던 1986년 건국대에서 열린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 투쟁연합’(애학투련) 발대식에 참가했다가 처음 구속됐다.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두 번의 투옥생활을 거치며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YWCA에서 협동조합 창립이라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시간은 험난했다. 2013년부터 협동조합의 필요성과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교육이 시작됐고 이를 도와줄 실무자 교육도 함께 이뤄졌다. 일본 현지 협동조합을 살펴본 김숙환, 김영숙, 임영란씨가 “해볼만 하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협동조합은 급물살을 탔다.

송 사무총장은 “노동자들이 사무실에서 일자리 알선만 받던 피알선자에서 협동조합을 통해 뜻맞는 사람들과 함께 출자금을 내고 사업주가 된 것”이라며 “돌봄과살림 협동조합은 사업을 함께 일구는 사업체이자 가사노동자의 권익이라는 뜻을 모으는 결사체”라고 말했다.

이전엔 일자리 연계를 담당했고 현재 협동조합 실무를 맡고 있는 김해경 부장도 “제가 일자리 매칭만 맡았을 때는 돌보미들이 제게 서운하거나 불만이 있어도 제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사업주로서 실무자인 제게 의견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서 수평적인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돌봄과살림협동조합 조합원 교육 현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돌봄과살림협동조합 조합원 교육 현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돌보미와 실무자들의 이러한 변화는 돌봄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돌봄서비스는 대면 서비스다보니 어느 업종보다 안전과 신뢰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이에 대해 송 사무총장은 “유료직업소개소의 경우, 한 돌보미가 한 집에 3개월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막아 돌보미가 매번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그만큼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협동조합 구조에선 소비자와 돌보미가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매달 독서모임과 업무교육, 후배 조합원을 위한 멘토링 일종의 선배 교육을 진행하며 전문성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분이 보장되고 전문성을 겸비한 돌보미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협동조합 조합원 돌보미들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간의 돌봄노동 협동조합 실험은 이제 사업체로서의 미래도 내다볼 정도로 안착했다. 송 사무총장은 “협동조합은 한 명의 대장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끌고 나가야 하는 조직”이라며 “무임승차없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모든 조합원들이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올해는 교육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모든 조합원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늘어나는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 확장도 고려 중이다. 최근에는 부천시가 저소득 워킹맘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돌봄과살림협동조합이 참여하기도 했다.

김영숙씨는 “매일 일을 나가기 전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열번씩 한다. 소비자와 처음 만날 때 예쁜 미소로 대하면서 ‘우리 협동조합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라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내 일에 책임감을 갖고 하게 됐다”고 했다.

임영란씨도 “전국 52개 YWCA 지부 중 처음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했지만 전국으로 확산돼 가사노동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전문직업인으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하는 사회가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숙환 이사장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합원들이 힘을 모으면 협동조합이 더 번창할 것”이라며 “나아가 정부와 국회가 약속한대로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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