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6 성북구 여성일자리 취업박람회’를 찾은 여성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4월 26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6 성북구 여성일자리 취업박람회’를 찾은 여성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를 보러 집을 나섰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고 아들은 크게 다쳐 응급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하러 달려온 외과의사는 차트를 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난 이 수술을 할 수 없네. 얘는, 내 아들이야!”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의 명저  『프레임』에 소개된 일화다. 이 대목을 읽고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외과의사가 실제 아버지고, 죽은 남자는 양아버지인가? 다음 구절을 보자.

“이제 그 의사가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읽어보라.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부끄러웠다. 남녀에 있어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서 ‘엄마’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 말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외과의사를 하는 여성이 그리 많지 않은 한 현실도 내 오해에 한몫을 했다. 요즘 의사가 되는 여성들이 과거보다 크게 늘었고, 외과 등 육체적으로 힘든 과에 진출하는 여성도 많아지긴 했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2013년 기준으로 외과 전공의 중 여성의 비율은 35%, 삼성서울병원은 30%에 달한단다. 더 많은 여성들이 외과 등 힘든 과에 진출한다면 나같은 사람이 가진 구태의연한 편견도 조만간 없어질 것 같다.

의료계와 달리 일반 기업에선 여성들이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중이다. ‘더비즈니스’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임원 6829명 중 여성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2%에 달했다. 13명에 불과했던 2004년과 비교하면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남성의 50분의 1도 안된다는 건 해도 너무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전문직이라 성별에 따른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의료계와 달리 일반 기업에선 인사가 윗사람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남성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갖다보니 승진을 시킬 때 되도록 남성을 택하고,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는 여성을 내보내는 선택을 한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지위에 있다면 실제 업무능력은 여성이 훨씬 더 뛰어난 경우가 많았던 건 다 이 때문이다.

여성이 고위직이 못되는 이유는 이것만은 아니다. 바로 육아로 인한 경력의 단절이 여성의 발목을 잡는다. 한창 일할 때인 30대 초반을 아이와 보내려 일을 그만두면 나중에 복귀하려 해도 자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여성이 수없이 많다.

육아는 물론 중요하다. 이왕이면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도 육아 못지않게 중요하고,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 몇 년 때문에 일에 대한 자신의 꿈을 접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집안일을 해줄 남자를 고르는 안목도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그런 남자가 가뭄에 콩나듯 해서 안목이 있어봤자 별 소용이 없긴 하다. 그렇다고 그 기간 일을 그만두는 것만이 최선일까. 일가친척을 동원하든 돈을 주고 사람을 쓰든 방법은 있다. 아이가 당장은 서운할지라도, 나중에 철이 들면 엄마를 이해할 테고, 오히려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 개인의 독립은 경제적 독립으로부터 시작되며, 일로 성공한 여성의 존재는 다른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로 힘들다고, 혹은 회사에서 이런저런 차별로 힘들다고 쉽게 사표를 던지는 일은 삼가자. 자신이 던지는 사표가 그 회사로 하여금 여성을 차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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