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와 서울YWCA, 언니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지난해 9월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tvN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렛미인5’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내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형 조장’ ‘의료 광고’ 등 비판을 받아온 ‘렛미인’은 시즌5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여성신문DB
한국여성민우회와 서울YWCA, 언니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지난해 9월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tvN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렛미인5’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내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형 조장’ ‘의료 광고’ 등 비판을 받아온 ‘렛미인’은 시즌5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여성신문DB

“외모도 자본이에요. 요즘은 신체 자본이라고…. 어쩔 수 없어요.”

쾌도난담이 오가는 어느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성 논객의 우스갯소리다. 작고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게리 벡커(Gary S. Becker)의 저서 『인적 자본』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 자본’ ‘용모 자본’, 나아가 ‘신체 자본’ 같은 말들이 ‘스펙’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세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진학이나 취업에 대비해 온갖 성적, 기록, 자격증을 모으고 관리해 만들어내야 하는 ‘스펙’은 노동 시장에 공급되는 인간의 노동 능력을 인성, 교육, 경력 등 다양한 요소의 총합으로 간주해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 부른 벡커의 논지와 닮아 있다.

노동 시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저임금을 받는 등 노동 시장 내의 지위가 낮은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인적 자본 이론도 그 중 하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 것은 남성에 비해 교육 훈련 기간이 짧고 경력단절 등으로 인적자본에 덜 투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젠더의 관점에서 노동시장의 불평등구조에 주목하는 논의들에 의하면, 노동 시장은 그다지 공정하거나 합리적인 곳이 아니다.

성별에 따라 입직 경로가 다르거나 직종, 직군, 직무 등이 분리되는 등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가 분절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적 자본의 투자량을 늘리는 개인들의 피나는 ‘노오력’만으로는 노동 시장에 구조화된 차별이 시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성에게 유독 ‘외모’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그것은 인적 자본으로 부가되기보다 차별의 효과를 낳기 쉽다.

돌아보면 과거에는 ‘직원’ 외에 ‘여직원’을 별도로 뽑아 입직 시 퇴직 각서를 받는다거나 결혼 후 퇴사를 하는 것이 관행으로 당연시되었으며, 이에 맞서 여행원의 ‘25세 조기정년 폐지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여성은 “실력보다 외모”라는 말이 횡행하고 ‘직장의 꽃’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1999년에 지금은 폐지된 ‘(구)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시행되고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된 다음부터 직원 모집 광고에서 일종의 상용구처럼 사용되던 ‘군필남’과 ‘용모 단정’ 따위의 표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고, 성희롱을 비롯한 각종 차별행위들에 대한 고충처리도 가능하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 명백하고 분명한 차별이 줄어들었지만, 한가롭게 추억으로 회상할 만큼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번듯해진 것 같지는 않다. 신동엽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지붕을 덮었던 쇠항아리” 대신 ‘유리 천장’의 승진 장벽이 자리잡았고, 여성직군 대신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취업을 앞두고 ‘압박면접’을 걱정하다가도 스펙에 ‘외모’까지 추가해야 하나를 고민하며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떠올리게 되는 청년실업 시대 아닌가.

데버러 로우드가 지적하듯이, 조직사회에 깃든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beauty bias)’은 개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취업의 희망을 줄어들게 하며, 실력주의 원칙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톡톡히 치르게 한다. 게다가 채용 시 업무 능력의 평가영역에서 벗어나 그와 상관없는 용모 등을 명시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7조 제2항을 위반하는 차별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최근 대통령의 파리 방문시 한류행사를 담당한 에이전시가 통역 및 행사 등의 진행자를 모집하면서 “용모 중요, 예쁜 분”에 집착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다” 여기며 반쯤 감았던 우리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당사자 여성의 명징한 일갈이 제법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대통령이 오는데 나는 왜 예뻐야 하나.” 그러게,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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