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번역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공동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29) 번역가가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201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번역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공동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29) 번역가가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201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채식주의자』 번역해 2016 맨부커상 공동수상한 데보라 스미스 

“문학 번역은 작품을 새롭게 써내려가는 창조적 작업”

“원작 살리기 위해서는 ‘불충’ 불가피”

매년 한국 문학 작품 1권 이상 번역해 영국 출간 예정

“하나의 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번역이나 한국 문학에 대해 특별히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겐 행운이 함께했고, 많은 분들의 도움과 협력이 없었다면 이번 성취도 없었을 겁니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그는 쑥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한국 문학 작품을 영어로 옮겨 소개하는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29). 최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해 화제에 오른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도 그의 손을 거쳐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났다. 15일 한국문학번역원이 마련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가 맨부커상 공동수상 소감과 한국 문학 번역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스미스 번역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런던 SOAS에서 현대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지 제가 사랑하는 작품을 더 많은 대중과 나누고 싶어서”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가 됐다. 2013년부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Human Acts)』, 『흰(The White Book)』, 안도현의 『연어(The Salmon Who Dared to Leap Higher)』, 배수아 작가의 『에세이스트의 책상(A Greater Music)』 『서울의 낮은 언덕들(Recitation)』등을 번역해 영미권에서 출간했거나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내 『채식주의자』 번역은 완벽하지 않다”며 “번역가들에게 완벽함이란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알면서도 추구하는 가치”라고 말했다. 

“문학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한 작품을 새롭게 써내려가는 창조적 작업”이라고 그는 말했다. “번역가가 원작의 어떤 부분에 충실하려면, 다른 부분에 대해 불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단, 원작 전체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때만 허용된다“고 덧붙였다. 

 

문화·사회적 개념을 번역할 땐 원본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외국 독자들에겐 낯선 ‘소주’, ‘만화’를 ‘코리안 보드카’, ‘망가’로 옮기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그가 반대했던 이유다. “한 문화를 다른 문화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소년이 온다』 번역본엔 ‘형’, ‘언니’를 한글 그대로 옮겼다. 

“번역본이 늘어날수록 독자들은 그 나라의 문화적 개념에 익숙해지죠. 오늘날 대부분의 영미권 독자들은 ‘스시’ ‘센세’ 같은 일본 문화적 개념들을 쉽게 이해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한국어 표현들도 독자들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에 이어 노벨 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노벨상에 대한 한국의 집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상은 상일뿐이죠.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작품을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해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를 설립했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작품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다. 최근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매년 1권 이상의 한국 문학 번역서를 내기로 했다. 오는 10월엔 황정은 작가의 작품이, 내년엔 한유주 작가의 작품이 영국에서 출간된다. 

“여전히 집에서 혼자 책과 컴퓨터를 끼고 일을 한다. 수상 후 얼마 동안 수많은 연락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스미스 번역가는 “문체나 스타일이 독특한, 흥미로운 한국 소설을 더 많이 발굴해 소개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스미스 번역가는 이날부터 총 나흘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해 작가, 출판사 직원 등 한국 문학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다. 19일엔 ‘한국문학의 세계화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로 대중 강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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