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자』
마녀사냥 자행한
미국의 개척자들 풍자해
미국적 가치로 승화
한때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항공사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다. 어디까지 가봐야 미국을 다 둘러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까지 가면 우리가 아는 미국이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작은, 그렇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순례자들이 도착하면서 미국은 시작됐다.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1607년 일단의 사람들이 제임스타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정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빈민, 부랑자, 범죄자들이었기에 미국 역사는 그들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선조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새로운 땅에 도착한 순례자들도 마냥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초기 정착 단계에서 땅은 물론 각종 편의를 제공했던 원주민, 즉 인디언들을 모질게 학살한 것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가장 잘 정리하고 있는 책이 바로 『메이플라워』다.
순례자들의 인디언 학살은 오늘 주제가 아니다. 오늘의 주제는 마녀사냥이다. 인디언 학살을 서슴지 않았던 순례자들은 스스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대양을 건넜지만, 이내 마녀사냥에 나섰다. 1692년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판, 즉 세일럼 마녀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 영국 국교회의 고답적인 신앙에 반해 신앙의 자유를 외쳤던 청교도 순례자들은, 주류가 되면서 자신들에 반하는 사상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1692년 1월 새뮤얼 패리스 목사의 딸과 조카딸이 특이한 행동을 보였는데, 의사는 어린 소녀들이 마법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주술을 걸었다고 지목된 사람은 패리스 목사 집에서 일하던 인도 노예 카리브와 두 명의 부랑자, 그리고 마을에서 소외된 여자들이었다. 종내에는 패리스 목사에 대항하던 마을 사람들도 고발됐다.
고소된 사람 중 50명이 주술을 행했다고 자백했고, 26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중 19명은 사형을 당했다. 놀란 매사추세츠 식민지 총독이 마법은 소송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희생된 뒤였다. 세일럼 마녀재판이 있기 전에도 무려 70여 건의 마녀재판이 매사추세츠와 코네티컷 식민지에서 자행됐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밟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자유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 미국의 개척자들이다.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힌트를 얻어 태어난 작품이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다. 17세기 보스턴의 한마을에 사는 헤스터 프린은 간통죄를 저질렀다는 명목으로 평생 간통(adultery)의 머리글자인 A를 주홍빛 천으로 만들고 그 둘레에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이른바 주홍글자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헤스터는 오롯한 삶을 살아냈고, 간통의 A는 능력(able)의 A이자 천사(angel)의 A로 바뀐다. 세일럼 마녀재판과 『주홍글자』의 결말을 확연히 다르다. 호손은 아마도 세일럼 마녀재판을 미국적 가치로 승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새삼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