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여 유림 집단으로 몰려와 법무부 토론회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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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법무부 주최 '호주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호주제 존치론을 주장하는 한국씨족총

연합회,성균관유도회총본부 등의 단체 6백여 회원들이 몰려왔다.

이들이 미리 5백석 규모의 방청석을 점거하는 바람에 호주제폐지를

주장하는 호폐모 회원 등이 바닥에 앉아있다.

지난 7일 법무부가 주최한 호주제도관련 토론회에 호주제 존치론자 6

백여 명이 집단적으로몰려와 방청석과 토론 자료집을 점유하고 토론을

방해하는 사태가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호주제 폐지하면 전통문화 말살된다’‘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혼인

결사반대’등의 띠를 두른 한국씨족총연합회,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정

통가족제도수호 범국민연합회, 대한노인회, 독립유공자유족회, 한국근우

회 등 6개 단체 회원들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여 일찍 토론장에 도착해

모든 방청석을 차지함은 물론, 토론 자료까지 모두 가져가 이후 도착한

기자단과 방청객들은 자료를 찾느라 애를 먹고, 바닥에 앉거나 서서 토

론을 들어야 하는 큰 불편을 겪었다.

호주제 존치론과 폐지론 입장을 대변하는 발제자들의 발표를 중심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먼저 정환담 교수(전남대 법과대학)가 “가족

공동체 유지, 가(家)의 계승, 동성불혼은 한민족 가족제도의 3원칙이기

때문에, 역사적 자생력과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인 호주제

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호주제 존치를 주장했다. 이에 김상용 교수(부

산대 법과대학)는 “현재 민법에 규정돼 있는 호주제는 우리 전통이 아

니고 군국주의 일본이 천황에 대한 절대 복종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나

라에 강제 이식한 제도일 뿐이며, 호주제가 존속하는 한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호주제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

다.

이 과정에서 방청석을 가득 메운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자신들의 견해

와 일치하는 발표자와 토론자에 대해선 ‘옳소’라고 찬동과 박수를 보

내는 반면, 자신들과 다른 소견의 발표자와 토론자에 대해선 웅성거리며

야유를 보내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집어 치우라”고 소리를 질러 수

차례 토론을 중단시켰다. 심지어 여성계의 입장을 발표하는 토론자에 대

해서는 “저 X 끌어내라” “낯짝 뻔뻔한 X”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토론자로 참석한 조준하 교수(동덕여대 교양학부)는

호주제 폐지론자에 대해 “능지처참해야 한다”,“매국행위다” 등 감정

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한국여성민우회 부설 ‘가족과 성상담소’의 양해경 소

장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소란을 피

우는 것은 토론의 자세가 전혀 돼있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회원들과 함께 참석한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의 변정수 씨는

“법무부가 호폐모 회원들을 공식 초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료 한 권조

차 남기지 않고 존치론자에게 모두 제공해 버렸다”며 주최측의 무성의

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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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론회를 준비한 여성정책과 이옥 담당관은 “호주제가 40년간

존속되면서 폐지론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폐지·

존치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고 밝히면서,

“(호주제 폐지가 빠진)민법개정안이 이미 제출된 상황에서 내부 반대에

도 불구하고 어렵게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여성계보다 유림측이 집단적

세를 보여준 자리가 돼버렸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한편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여성계의 운동전략을 바꿔야 하지 않겠냐

는 의견도 일고 있다. 그동안 호주제를 비롯한 여성문제에 대해 공감하

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막상 결집된 조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여성계의 큰 약점이라는 것이다. 국민적 설득을 위해서는 여성계에서도

대외적인 의지 표명과 집단적인 세를 보여주는 전략도 필요하다는 게 이

번 토론회를 지켜본 이들의 또다른 견해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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