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2013년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나눈 대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8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합니다.” “그렇게 적게 공부하고도 어떻게 성적이 좋죠?” “11시가 밤 11시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대한민국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세계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김용 총재는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천천히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며 그런 시스템에 아이들을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입시 경쟁 속에서 학원 심야영업과 휴일영업은 팽창돼 왔다. 고등학생들의 학습 시간은 주당 70(일반고)~80시간(특목고)에 육박하고 있다. 주5일제가 도입됐지만 학생들에게 주말은 학원가는 날이 되었다. 대한민국 주당 근로시간이 4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라고 한다. 어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절실한데 학생들에게 ‘쉼이 있는 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밤도 없고 휴일도 없는 무한경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최소한 학원의 심야영업과 휴일영업은 규제될 필요가 있다.

학원업계는 심야영업이 학습권 보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사교육 이용권’이라 불러야 한다. 사교육은 빈곤층의 접근이 제한되는 불공정 경쟁에다 과열 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폐단이 있으므로 공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2008년 헌법재판소가 학원 심야영업 제한 조례를 합헌이라고 판결한 이유다.

혹자는 학원 심야영업 제한이 개인 과외를 늘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가설일 뿐 실제 결과는 밤 10시로 제한하는 지역이 밤 12시까지 허용하는 지역에 비해 과외를 포함한 심야 사교육이 32.6% 감소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풍선의 압력이 전체적으로 빠진 것이다. 만약 밤 11시로 연장하게 된다면 약 23%의 심야 사교육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서울시 박호근 의원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을 맞추기 위해 밤 10시로 제한하는 서울 조례를 밤 11시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는데 형평을 맞추려면 다른 지역을 앞당기는 것이 마땅하다. 여론조사기관 지앤컴퍼니가 학원 시간에 대해 2015년 1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78.5%가 밤 10시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육부도 밤 10시를 권고했다. 하지만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5개 지역만이 10시이고 과반수가 넘는 지역이 12시까지 허용하고 있다. 학원업계의 이익이 지나치게 반영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2008년 정부와 국회가 입법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면서 발생한 것이다.

한편 학부모들의 95%는 학원 휴일 휴무제를 찬성하고 있다. 학원을 보내는 부모들의 대다수가 이를 지지한다는 것은 학원을 자발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기 때문에 마지못해 보내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동시에 멈추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이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낼 정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학생들은 경쟁이 심화될수록 모두가 제로섬 게임 속에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입시 경쟁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극단적 경쟁의 폐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유한 경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할 때다. 더 이상 우리의 자녀들을 이윤 추구의 희생물로 내어줘서는 안 된다. 20대 국회는 학원의 심야 영업과 휴일 영업을 제한하는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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