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남긴 것

나도 ‘그녀’일 수 있다 느낀 여성들

자발적 연대로 SNS·거리에서

‘여성혐오’의 위험성 가시화

잘못된 인식·문화 뒤집으려면

경청·성찰·젠더교육 절실

 

5월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에 마련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추모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
5월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에 마련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추모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여성 살해’ 사건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여성혐오’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린 결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말이 살해 이유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여성은 누구라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일터와 집에서 조차 ‘여자라는 이유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뿌리 깊은 ‘여성혐오’ 문화와 구조를 바꿀 것을 사회에 요구한다.

피의자 김모(34)씨는 5월 17일 오전 1시25분께 강남역 인근 상가 건물의 공용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23세 여성을 수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여자가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고, 화장실에 숨어 1시간 반을 기다리다 남성 6명은 보낸 후 여성을 골라 살해했다. 계획적으로 여성을 특정해 죽인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지배적 문화코드로 자리 잡은 여성혐오가 기저에 깔린 상태에서 조현병으로 표출된 사건”이라며 “피의자는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어야 하는 여성에게조차 무시당했다는 생각으로 더 큰 모욕감을 느꼈다, 이것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게 자신의 분노와 공격을 투사하는 ‘투사적 혐오’로 드러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 여성을 위한 추모 공간이자 여성들 스스로 여성혐오의 위험성을 가시화한 공간이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 여성을 위한 추모 공간이자 여성들 스스로 여성혐오의 위험성을 가시화한 공간이다.

사건을 접한 평범한 여성들은 공포와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면 내가 피해 여성이 될 수 있었다는 동일시다.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생애 전반에서 겪은 차별과 폭력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이해했다. 공감은 본격적인 연대로 이어지며 트위터에는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 계정이, 카카오에는 ‘여성혐오 범죄 반대 추모집회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 공간을 조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추모의 벽’이 생겼고 추모 열풍은 ‘여성혐오’ 공론화로 이어졌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범한 여성들이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하고 여성혐오의 위험성을 가시화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부당함의 영역을 인지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을 알게 됐고, 다른 여성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 그리고 지지와 연대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며 “특히 소라넷 폐지와 같이 실제로 부당함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역량을 키운 것이 이번에 여성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차가운 현실과 당당히 맞서게 된 배경”이라고 짚었다. 여성단체나 학자들의 주도가 아닌 부당함의 영역을 인지하고 각성한 일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일반 여성들이 제도화된 영역에선 이름 붙이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했다”며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이론화하고 운동화 하던 것을 평범한 여성들이 체험적으로 이해해고 이름붙이고 위험성을 드러냈다는 점이 놀라운 것”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에 기인한 침묵과 방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여성들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여진 추모 쪽지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여진 추모 쪽지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수만 장의 포스트잇과 신촌에서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통해 여성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직시하고, 성찰하기를 사회에 요구한다.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주최한 한국여성민우회의 최진협 사무처장은 “여성들이 길거리, 엘리베이터, 화장실, 심지어 집에서 겪은 차별과 폭력을 이야기하지 않고 침묵한다면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여성혐오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문제의 본질을 모르겠다면, 먼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여성들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발적인 추모 열기와 여성혐오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 교수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듣는 것”이라며 “정치권은 여성들이 왜 피해자와 동질감을 느끼는지, 왜 여성혐오 범죄라고 하는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소통 창구를 마련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여성 살해’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성에 대한 통제와 보호에만 초점을 맞췄던 정치권이 이번에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여성혐오를 당장 없애긴 사실상 어렵다. 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성차별적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젠더교육과 문화 운동이 병행돼야 한다”며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층적이고 장기적으로 문화적 운동과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자유주의 사회에선 전통적인 남성성을 유지할 수 없고,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고 책임뿐만 아니라 권리도 나눠야만 거대한 자본주의에 함께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을 남성들이 알아야 한다”면서 “여성혐오에 맞서는 것은 공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했다.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