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 수은주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테스트라도 하듯이 유난히 무

덥고 찌는 듯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숨막

히는 무더위와 습기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강건히 자리잡고 있는 가부

장적 권위의식처럼 갑갑하기만 합니다.

올해 여성계에서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답니

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혼인 시 여성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해야 하

고, 아이들 역시 부가 입적 및 부성을 따라야 하는 등 ‘이보다 더 남성

중심적일 수 없는’ 제도로 인해 많은 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피해를 받

고 있는데도 수십 년 동안 그 명맥을 끈질기게 유지해온 호주제도 말입

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호주제도와의 싸움은 단지 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넘어서 이 사회의 보수주의자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사회 남성 전반과

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해 호주제도로 인한 피해 및 불만 신고전화를 받으면서 참으로

많이 울고 기 막혀 하던 심정들이 되살아납니다.

남편의 외도와 범법 행위 때문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혼을 하신 분

이셨습니다. 콩나물 장사에서부터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

을 하며 현재 고등학생인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남편

이 이제 나타나서 아이들을 데려가겠다고 한다며, 이 모든 것이 이혼한

여성의 호적에 자식을 올릴 수 없도록 만든 호주제 때문이라며 울먹이셨

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자식들이 따돌림을 당할까봐

어렸을 때 외국으로 유학보냈다는 재혼 여성, 친정 아버지 생신인데도

얼굴도 모르는 시증조부 제사 지내느라 장녀 노릇 한 번 제대로 못한다

는 기혼 여성, 남편이 외도로 낳은 아들을 아내 몰래 입적해 놓고 이혼

을 강요한다는 자식 못낳은 여성 등...

거창하게 남녀평등, 부부평등 문제까지 들먹이진 않겠습니다. 적어도

이렇게 인간이 만든 제도 때문에 여성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례

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올해 민법 개정

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과 이혼한 여성의 호적에 자식을 입적시키지 못

하는 사례 등으로 위헌소송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개개인의 힘으로는 넘기 힘든 가부장제도의 높은 벽을 같은 피해를

당하는 많은 분들과 힘을 합쳐 헌법과 국제규약에서 보장하는 혼인과 가

족생활 보호권, 남녀차별금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 내야 할 것입니다.

힘을 보태실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일요일 호주제 폐지 가두서명시 한 여성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

다. “이렇게 한다고 바뀌나요?”“이렇게 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

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가정폭력·성폭력방지법, 남녀차별금지법 등

이 모두 이렇게 해서 제정된 법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이루

는 데 몇 년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것때문에 피해를 받는 여러

자매들과 그 이후 세대들의 권리를 찾는데 지금부터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결국 서명을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호주제 폐지운동 펼치는 이구 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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