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훈 베네수엘라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
베네수엘라 20년 만에 올림픽 메달 안겨...여자 선수 사상 첫 메달
"리우올림픽 위해 최선...태권도대학 설립과 지역 태권도훈련센터 설립이 꿈"
베네수엘라에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전파하고 20년 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한국인이 있다. 베네수엘라 태권도 국가대표팀 김성훈(45) 감독이다. 한국인이 200여명뿐인 베네수엘라에서 김 감독은 유명인사다.
베네수엘라는 최근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브라질 리우올림픽 출전 종목 중 메달 가능성이 있는 5개 팀을 엄선해 해외 전지훈련을 보냈다. 이 중 가장 기대받는 종목이 태권도다. 2004년 메달 두 개 중 하나, 2008년에는 유일한 메달이 나왔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베네수엘라는 20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얻었다.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첫 메달이라 의미가 더 컸다. 인구가 3천만명 정도인데 올림픽에 100명 넘게 출전할 정도로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동안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당시 그 선수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카퍼레이드만 두 시간 넘게 하는 등 국민적 영웅이 됐고, 상당한 포상금과 집, 차 등을 받았다. 정말 가난했던 선수 가족이 그 덕분에 잘 살고 있다. 감독인 내게도 대통령이 훈장을 내렸다.”
4년 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여자 태권도 선수인 달리아가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메달이었다. 김성훈 감독은 베네수엘라 기자단 투표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김 감독의 베네수엘라 생활은 올해로 13년째다. 지구 반대편 남미대륙, 그 중에서도 낯선 베네수엘라에 어떻게 가게 된 걸까. 김성훈 감독은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시작했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선배의 아버지가 권유해 얼떨결에 입문했다. 성동고-한국체대-연세대 교육대학원까지 엘리트체육 코스를 밟았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을 맡다가 2002년에 귀국해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해 베네수엘라가 세계태권도연맹에 감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연맹은 김 감독을 추천했다.
그가 배출한 메달리스트는 전부 여자 선수다. 여자 선수의 성적이 좋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여자 선수들과 호흡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남자는 기술을 다양하게 많이 가르쳐야 하는데 비해 여자는 한두 가지만 가르쳐줘도 응용을 잘하는 편이다. 여자 선수는 감독을 믿고 따라와 줄 때 기량은 훨씬 커진다. 물론 감독마다 다르다. 여자 선수가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커서 힘들다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는 여자 선수들의 마음을 읽고 교감하는 능력이 좀 더 있고 이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잘하건 못하건 간에 항상 너를 믿는다고 자신감을 주는데 여자 선수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태권도 불모지라 오히려 쉽게 성공한 게 아니냐는 일부 시선도 있었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뭐든 그런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은 쉽게 이룬 것 같고 편해 보이지만 분명 남모르게 더 많이 땀 흘렸다. 항상 고비가 오는데 어떻게 참고 견뎌 나가느냐가 성패를 좌우하는 것 같다. 초기엔 그냥 길을 걷다가도 내가 왜 이 낯선 나라에서 이 고생을 하나 싶어 하루에 열두 번도 짐을 쌌다가 풀었다. 외롭고 말도 안통하고 음식도 안 맞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성적을 내야 하는데, 우리와 교육방식이 너무 달라 막막했다. 한국 방식대로 훈련을 했더니 선수는 물론 태권도협회장까지 나서서 운동량을 줄일 것을 권유했다”
베네수엘라 태권도팀을 지금까지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교감을 꼽았다. “때로는 아빠처럼, 오빠처럼 함께 했던 것 같다. 올해 2월 멕시코에서 올림픽 출전 선발전을 치렀는데 남녀 통틀어 대표팀 0순위였던 여자 선수가 패하고 말았다. 그 선수가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 친구가 ‘미안하다, 감사하다. 그렇게 많이 도와주셨는데 졌다’고 했다. 언어가 부족해 정확히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에 마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대답했다. ‘올림픽 메달보다 너의 그 한마디가 더 소중하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올림픽 메달 획득 때 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김 감독은 베네수엘라태권도협회의 도움에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지도자 혼자 잘하거나, 선수 혼자 뛰어난 걸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협회까지 삼박자가 잘 맞았다. 베네수엘라태권도협회 김홍기 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중학교 때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성장해 언어나 정서적으로 현지인에 더 가까운 분이지만 같은 한국인으로서 외국인 감독이 견딜 수 있게 힘이 돼주셨다.”
김 감독의 단기 목표는 리우올림픽에 메달 획득이다. 출전하는 68kg 체급이 경쟁이 가장 치열하고 올림픽 메달은 신이 내려준다고 할 만큼 예측 불가능하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만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메달 획득보다 더 큰 꿈은 베네수엘라에서 태권도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인구가 약 3천만 명인데 태권도 인구는 2만 명 정도라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저변을 확산시키기 위한 첫 번째 목표는 태권도대학 설립이다. 그 다음은 24개 도시마다 트레이닝센터를 짓는 것이다. 도시끼리 서로 전지훈련도 하고 겨루기도 하고 품새, 시범, 격파 등 한다는 거다. 이 계획은 제법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체육부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높은 메달리스트 제자 아드리아나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지자체장들, 베네수엘라 올림픽위원장과도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정착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는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태권도 생활을 할 수 있는 날까지 모든 걸 바쳐서 태권도와 한국을 알리는 게 목표다. 당장 내년에, 아니면 10년, 30년 후에 정리하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거다. 힘은 들더라도 아쉬움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쏟고 왔다고 생각이 들게 지내고 싶다. 베네수엘라에 역사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