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0세대 60명 1기 입학
박원순, 최재천 등 강사로
녹번동 50+캠퍼스에 개교
이우학교 초대교장인 그가
베이비부머 인생 후반전 돕는
동반자로 팔 걷어붙인 사연
학교는 20대 때 작파하는 줄 알았는데 4060세대를 위해 문을 연 학교가 있다.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다 내동댕이쳐지는 나이, 운좋게 정년퇴직해도 100세 시대란 말에 주눅 드는 나이,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리다 눈물 쏟는 나이. 그런 4060을 위한 학교, 50+인생학교다.
그런데 이 학교, 희한하다. 학생 대신 동반자가 있고, 수업 대신 워크숍을 연다. 과목도 독특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함께 할 커뮤니티 만들기’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한 사람 만나기’ ‘인생 후반부 스토리텔링’ ‘개저씨는 왜 혼자가 되었나’ ‘은퇴 후 협동조합으로 집짓기’….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이 아니라 인생 2막 설계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특강 강사진도 화려하다. 박원순 서울시장부터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바이크 보헤미안’을 자처하는 최광철-안춘희 전 원주부시장 부부까지 명사들이 나선다.
이 학교 정광필(59) 학장은 그 자신이 예순을 목전에 둔 베이비부머다. 정 학장은 17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생전환기에 자신을 탐색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해보자는 취지로 문을 연 학교”라고 말했다.
정 학장은 지난해 SBS 4부작 다큐멘터리 ‘바람의 학교’에서 학교에 적응 못한 ‘꼴통’ 16명을 쥐락펴락하는 교장으로 출연해 화제를 낳았다. 사실 그는 이우학교 1, 2대 교장을 지낸 혁신교육 전문가다. ‘사교육 1번지’ 분당에 터를 잡은 최초의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8년간 교장으로 일하면서 혁신교육을 일궈온 그가 베이비부머들의 인생 후반전을 돕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자칭타칭 ‘인생 대전환 프로젝트 전문가’다.
50+인생학교는 서울시 서울50+재단이 운영하는 녹번동 서북50+캠퍼스(http://sb.50campus.or.kr)에서 문을 열었다. 5월 4일 시작해 7월 7일까지 매주 하루 4시간씩 10회가 운영된다.
“1기생으로 45∼65세 60명이 입학했어요. 입학은 까다로웠죠. 자기 인생에서 ‘뺄 것’ ‘더할 것’을 정리한 마음준비서를 내게 했거든요. 교양 쇼핑족이 아니라 ‘싱싱한’ ‘다양한’ 동반자가 될만한지 봤어요. 몸과 마음 준비를 마친 분들이라 다들 ‘범생이’예요. 학장인 제가 요즘 분위기 깨는 역할을 맡고 있죠.”
‘50+세대’는 50년을 살아왔고 플러스(+)의 50년을 더 살아가야 할 세대다. 정 학장은 “대기업에선 40대 후반이면 떠나야 하는 분위기다. 조직과 가족에게 맞춰 한평생 살아온 베이비부머들은 100세 시대를 맞아 ‘두평생’을 살아야 한다. 더욱이 아무개 엄마, 아무개 부인으로 살아온 여성은 ‘자식의 자식’까지 챙겨야 하는 세태니 고민이 더 많다”고 했다. 그는 “각자도생하다간 뒷방늙은이가 되기 십상”이라며 “이젠 정규직이나 안정적인 직업은 있을 수 없다. 우선 어깨에 힘을 빼고,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혼자선 어렵다. 동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나 시대의 부름에 순응했다. 유신독재 반대 시위로 대학 1학년도 못 채우고 제적됐다. 19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1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강제징집됐다가 제대 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투신했다. 20년 가까이 사회운동을 하던 끝에 교육을 만났다. 그는 이우학교를 통해 “다른 배움은 다른 꿈을 낳고, 다른 가치관은 다른 해결책을 낳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우학교를 떠난 후 강연과 강의에 집중했던 그가 이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꿈을 꾸자고 부추긴다. 곶감 빼먹듯 노후자금을 뽑아먹고 사는 게 다는 아니라는 얘기다. “서북50+캠퍼스가 들어선 서울혁신파크에 젊은이들이 뭉쳐서 만든 다양한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 이 있어요. 경험이 부족하고 네트워크가 약한 젊은이들과 협력하고 세대간 장벽을 넘어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이웃과 세상을 돕는 사회공헌 사업에도 눈을 떴으면 해요.”
정 학장은 “50+인생학교의 주인은 서울시 50+재단도, 학장인 나도 아니다. 여기에 입학한 동반자들”이라며 “이들이 중심이 돼 도전하고 만드는 곳이 50+인생학교다. 조만간 자치회를 강화하려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