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이 또 휴가를 나왔다. 반갑지만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동료의 몫을 대신 나왔다고 했다. 그의 부모가 이혼해서 휴가를 나가도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일간지에서 읽은 기사 일부다. 군대생활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일이 휴가라고 하는데, 그 휴가가 나왔어도 갈 곳이 없게 되어버린 그 사병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쪽을 가도 안 될 것 없겠지만 그 마음이 가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의 뿌리다. 뿌리가 하루아침에 잘려버리면 무릎을 땅에 대고 맨살로 얼마를 기어야 할까. 피눈물 흘리며 몸부림을 쳐야 새살이 돋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나무는 아무리 목이 마른 가뭄에도, 아무리 얼어붙은 혹한에도 한 번 선 자리가 벼랑이든 돌밭이든 그대로 서서 자기 몸에서 돋아난 가지를 살리려고 쉴 새 없이 심장에 풀무질을 해댄다.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비틀며 휘어지면서 그 많은 가지 중 하나도 잘라 버리지 않고, 가지가 꺾일까봐 안간힘을 쓰며 몸을 지탱해 가는 나무, 그래서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게 아닐까.

내 몸에서 태어난 생명을 키우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기본이며 하늘이 내게 준 사명이다. 부모가 이혼해서 마음 붙일 곳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의 수가 수만 명에 이르는 이 현실을 우리가 눈감아서는 안 될 것이다. 가정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라고 하지 않던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여성도 남성도 그 어떤 고통이 와도 내가 낳은 자식은 내가 길러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다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고 자식을 위는 길이며 사회와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일 것으로 믿는다.

얼마 전에도 생부와 계모의 학대로 일곱 살 아이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숨지고 결국 한 줌의 재가 된 아들을 생모가 안고 가는 뉴스를 보았다.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이고 전부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는 마음속의 아랫목이고 든든한 나만의 울타리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정채봉 시인은 한 편의 시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부모의 이혼이 자녀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깊고 쓰라린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 불가피하게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부간의 결정이지 아이의 선택이 아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줘야 할 사랑과 보살핌이 이혼을 핑계로 나눠지거나 줄어들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한 생명으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 어떤 이유로든 이혼을 하게 되면 아이에게서 그 권리를 빼앗은 것이 된다. 타고난 권리를 빼앗은 부모는 그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최선을 다 해야 마땅한 일이다.

한 포기의 풀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모진 비바람과 얼어붙은 추위를 견디고 난 후에야 봄을 맞아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듯이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에 왔다가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 아닌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한 줄기 바람 같은 생이 아닌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한 생명으로 태어나면 동물이고 식물까지도 자기 몫의 책임과 고통이란 짐이 있다. 생명이 있는 한 그 짐은 꼭 지고 가야 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주어지는 굴곡이며 험산 준령이기도 하다. 그것이 곧 삶이다. 그래서 삶은 곡선이다. 우리가 직선이 쉬울 것 같지만 삶은 그게 아니다. 오르고 내리고 후밋길에서 비를 맞고 눈을 맞고, 휘몰아치는 태풍의 밤길을 한 구비, 또 한 구비 돌고 넘을 때 삶의 꽃봉오리가 거기서 조랑조랑 맺히는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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