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주최 체육대회, 예선부터 ‘성차별’ 논란
여자는 축구경기·남자는 피구경기 출전 금지
“축구하는 여학생 적어서 ‘여자축구’ 종목 뺐다”
기존 방식 고집할 뿐 성차별 개선 의지 없는 교육청
초등학생 조어진(12) 양의 꿈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다.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인 지소연, 손흥민처럼 멋진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연습에도 열심이다. 월요일~금요일까지는 경기도 양평군의 학교 운동장에서, 주말엔 지역 초등부 축구단에서 날마다 축구를 한다. 또래 선수 중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편이다. 지난해 9월 한국-라오스의 친선경기 땐 ‘축구 꿈나무 어린이’로 뽑혀 선수들과 손잡고 그라운드에 입성했다. 도내 유일의 여자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진 양은 지난 10일 시작된 전국대회 예선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3일 어진 양의 학교에서 날아온 ‘제10회 교육장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참가 신청란은 ‘남자 축구’와 ‘여자 피구’로 나뉘어 있었다. 여자는 축구 경기에 나갈 수 없고, 남자는 피구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
어진 양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여학생 3명과 함께 지도교사를 찾아가 “여자도 축구를 할 수 있다, 축구를 하고 싶다”며 항의했지만, “여자는 안 된다. 위에서 결정한 거야”라는 말만 들었다.
“하고 싶은데 어쩌라고....이건 차별이야. 분하고 짜증나!” 다시 항의하겠다며 가족들 앞에서 할 말을 연습하던 어진 양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축구 꿈나무’ 소녀는 왜 뛰어보기도 전에 그라운드를 잃어버렸을까. “축구하는 여학생들이 별로 없어요. 선수가 없으니 여자팀도 없고, ‘여자축구’를 종목에서 뺄 수밖에 없었죠.” 대회 운영을 총괄하는 경기도 교육청 측의 해명이다. 기존처럼 대회를 운영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는 설명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에 대한 고민이나 개선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스포츠클럽 대회’는 매년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주최로 열리는 학교대항 체육대회다. 상반기(4~8월) 지역 토너먼트를 거쳐 하반기(9~12월)엔 전국대회가 열린다. 참가 초·중·고교 수요조사 결과 참가팀이 3팀 이상인 종목만 골라서 경기를 치른다. 종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남성 단체’ ‘여성 단체’ ‘혼성팀’ 부문으로 나뉜다.
올해 경기도에선 교육부 지정 24종목 중 13종목만 골라 토너먼트를 치른다. 초등부 ‘여자 축구’ ‘남자 피구’ ‘혼성 피구’ 종목은 제외됐다.
경기도 교육청 양평교육지원청 이경철 장학사는 “경기도엔 작은 학교가 많다 보니 이들 종목에 출전할 선수가 부족하다. ‘여자 축구’ 종목은 3개교가 모여야 겨우 팀을 이룰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장학사는 “소수의 여학생이나 남학생을 위해서 규칙을 바꿀 수는 없다. 본 대회는 ‘엘리트 양성’이 아니라 교내 생활체육 활성화에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성별 제한을 철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장학사의 답변은 이랬다. “그런 논의는 지금껏 한 적이 없다. 여학생들이 축구하는 경우도 별로 없지 않은가. 우리는 대한체육회, 교육부 등 상위 기관의 방침을 따를 뿐이다.”
어진 양의 친언니 조연주 씨는 “성별 제한을 없앨 방법을 모색해야 할 판에 왜 뒷걸음질 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인가요? ‘여자’라는 이유로 어린이한테서 기회를 빼앗고 상처를 주다니요. 2016년에 왜 그러나요.”
그는 현재 각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축구교실엔 남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동생도 교내 특기적성 축구단에서 남녀 선수들과 함께 뛰었어요, 지난해 메르스 사태로 경기가 취소된 경우를 빼면, 지금껏 교내 경기 참가 신청에 성별 제한을 둔 적은 없었고요. 더 큰 대회에서 이러니까 황당하죠.”
대회 규정도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부의 ‘학교스포츠클럽 리그 운영 매뉴얼’(2013)을 보면,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종목은 “초·중별 최소한 남학생 5종목, 여학생 3종목 이상 개최”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은 소극적이고 남성은 활동적’ ‘여성은 연약하고 남성은 강하다’는 관념은 편견이 된 시대다. ‘여성다운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신체 활동을 권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학생들에게 더 많은 체육활동 참여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쨌든 길이 없는 건 아니니까, 동생에게 ‘내년에는 한 번 나가보자’며 달랬어요.” 연주 씨가 말했다. “동생은 축구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너는 여자라 축구 경기에 못 나간다’는 말을 들었던 날도 친구들과 함께 ‘분노의 축구’를 하러 나갔죠. 하하하. 용기를 내어 그건 차별이라고, 잘못됐다고 말한 동생의 목소리가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