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로 살고 있는 나와 나의 가족들이 이 코미디를 보고 웃을 수 없었다면…

꼭 이런 웃을 거리가 필요했는지 댓글을 쓰고 ‘좋아요’를 누른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tvN 코미디빅리그 ‘충청도의 힘’ 코너에서 한부모가정을 비하해 물의를 빚은 개그맨 장동민(맨오른쪽).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free prescription cards cialis coupons and discounts coupon for cialisprescription drug discount cards blog.nvcoin.com cialis trial co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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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개그맨 장동민이 페이스북에 쓴 글에 달린 댓글 1430개(4월 11일 오후 5시 기준) 중 254개를 열어 봤다. 그 내용을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볼 수 있었다.

이혼 가정 또는 한부모 가정의 구성원 중에서 장동민의 페이스북을 직접 찾아와 댓글을 다는 연령은 아마도 부모 세대보다는 자녀 세대들일 것이다. 그 자녀 세대 몇몇은 본인들도 한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별 불편함이 없었고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을 굳이 ‘고소’까지 간 것이 더 웃기는 일이며 웃을 때 아픔은 전복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대부분의 젊은 층들은 장동민을 위로 하면서 늘 있는 일이며 장동민은 기존 개념의 틀을 깨는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예술과 윤리는 별개의 것이며 이미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은 희극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있다는 코빅 예찬론자들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로는, 이 사태를 한 개인의 잘못으로 몰고 간 어느 단체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부류 또한 눈여겨 볼 만했고, 심지어 한부모를 ‘편부모’로 보도한 기사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차별없는 가정을 위한 시민연합(차가연)’이란 단체에 대해서 고소하는데 힘쓰지 말고 좀 더 한부모들을 위해 일하라는 비난조의 댓글도 볼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 우리는 짤막하고 잘 정리된 기사 몇 컷으로 사건을 인식한다. 그리고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을 잊어버리지만 그 사건과 관계된 몇몇의 개인들과 단체들은 그 사건을 계속해서 재생산해내면서 때론 양심을 그리고 때론 효과적인 이득을 건지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담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사건으로 기술되는 그 사건의 전말과 실제로 일어난 일,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의 전개 그리고 또 다시 편이 나뉘고 실제의 사건과의 좀 더 다른 해석의 틀 안에서 어떤 사건은 제자리에 머물고 또 어떤 사건들은 이전의 해결 보다 못한 결말을 내기도 한다.

처음 이 사건의 전개는 장동민의 발언과 이어지는 차가연이라는 단체의 고소 그리고 이어지는 장동민의 하차와 그에 아쉬워하는 많은 팬들의 아우성, 친구 유상무의 한부모 단체에 대한 발언 등이었다. 대부분의 댓글들에서 보여지 듯 왜 다양한 표현과 행동들이 존중받지 못하는지와 한 사람을 잘못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는 성숙한 듯 보여 지는 발언도 있었고 소수 그러니까 지금은 ‘대중 vs 장동민’이라는 대립각을 설정하고 장동민에게 힘내라는 메시지 등 얼핏 보면 소수에게 힘을 주고 다수의 잘못을 꾸짖는 듯 보이기도 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계급갈등과 개인주의일 것이다. 계급은 이제 발언하기조차 쉽지 않은 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현상에서 계급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계급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의 사람들이라고 인식되기 쉽다. 또한 전무후무한 개인주의는 스마트폰의 확산과 개인 중심적 사고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집단 활동 등으로 이어져 잘못된 개인 중심주의는 더 이상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반성의 기회를 놓쳐 버리고 ‘나’ 중심적인 사고를 점점 더 고착화시킬 뿐이다.

자유를 향한 민주주의가 위에서 언급된, 돌이킬 수 없는 반윤리적 개인중심주의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하지 말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 또한 약자를 배려하려는 순수한 목적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인데 이는 차별의 대상이 모더니즘 시대와는 다른 차별의 기준을 좀 더 이완시켜 좀 더 다양한 계급의 구조를 인정하고 그 상호 간의 주관성을 인정하려는 사회로 갈 수 있다는 또 다른 대안사회로의 가능성이었다. 그런 이유로 담론이란 그리고 그 담론을 담아내는 매체는 끝도 없는 발전을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대중 vs 장동민’ 또는 ‘한부모가족 vs 장동민’이라는 카테고리가 내내 불편했다. 사건의 전말이야 장동민이 한부모가족을 비하했다고 하지만 나중에 이어지는 기사들과 장동민 페이스북의 댓글들을 보면서 점점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 장동민을 고소한 한부모가족 단체들이 오히려 곤경에 처해지는 것을 보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차별 없는 사회로의 역행을 보는 듯했다. 누구나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누가 이 사회의 약자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 약자들을 계속 약자 계급으로만 머무르게 하는 사회인지, 약자가 더 이상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회의 잘못된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 그들 개인만의 문제인지 좀 더 활발한 논의 없이 서로 간의 공격으로만 치닫는 것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면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저질러지는 약자들에 대한 공격에 나는 오늘도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입니다’ ‘입양아가 아니라 입양인 입니다’ ‘편부모가 아니라 한부모입니다’라는 다소 비공격적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한부모 단체(차가연이 아닌 한국한부모연합)의 활동가이지만 한부모로 살고 있는 나와 나의 가족들이 이 코미디를 보고 웃을 수 없었다면 그리고 나의 40대 입양인 친구들이 왜 자꾸 우리를 어린이로 부르는지 화가 난다고 한다면 꼭 이런 웃을 거리가 필요했는지 2404개의 댓글(2016년 4월 11일 오후 7시 현재)과 1만637개의 ‘좋아요’를 누른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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