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응징,
박근혜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에 대한 거부감 폭발
20년 만에 3당체제가 만들어진 것
거대 여야 정당 누구도 비전도 다짐도 보여주지 않아
4·13 총선 과정 모두가 패배한 최악의 선거
4·13 총선이 막을 내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이변이 일어났다.
야권 분열이라는 유리한 구도속에 선거가 치러졌는데 새누리당이 충격의 참패를 당하며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2000년 총선이후 16년만에 여소야대가 만들어졌다. 수도권은 더민주, 호남은 국민의 당이 석권하면서 ‘야권 협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못지않게 이번 총선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20년 만에 3당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1996년의 3당 체제는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139석)-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79석)-김종필 총재의 자민련(50석)이 중심이었다. 여소야대와 신3당체제가 20대 국회, 더 나아가 향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사다.
상황에 따라 조기 레임덕이 올 수 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노동개혁, 경제 활성화 등 일부 쟁점 법안 처리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식물 국회의 주범으로 겨냥했던 국회 선진화법 개정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이런 대이변이 왜 도래했을까. 공천 파동에서 보여준 정부 여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응징, 박근혜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폭발한 것이다. 집권 3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저성장, 청년 실업, 양성 평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심판도 크게 작동한 것 같다.
또한 지역구 후보는 더민주, 정당 투표는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전략적 투표가 수도권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선거에서 더민주 후보를 찍은 사람 중 20.8%가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 당을 찍었다. 심지어 새누리당 지역구 후보 투표자 중 12.9%가 정당투표에서 국민의 당을 지지했다. 국민의 당이 더 민주 지지층뿐만 아니라 중도 성향의 여당 표를 잠식해 수도권 초박빙의 선거구에서 더민주 승리의 견인차가 된 것 같다.
20~30대 젊은 세대 투표율이 크게 상승한 것도 야당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출구조사 결과,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각각 49.4%와 49.5%였다. 이 수치는 2012년 총선때 보다 각각 7.9%P와 5.0%p 상승한 것이다.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각각 65.0%와 70.6%였는 데 4년 전과 비교해 2%p 정도 상승하는데 그쳤다.
더불어 이번 총선에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제가 젊은 세대의 투표율을 꿀어 올린 것 같다. 외형적인 선거 결과만 보면 새누리당이 참패했고, 야당이 승리했다. 하지만 이번 4․13 총선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측면에서 평가해보면 모두가 패배한 최악의 선거였다. 무엇보다 여야 정당이 보여준 공천 행태는 지극히 반민주적이었다. 상향식 공천과 시스템 공천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보복 공천과 꼼수 공천으로 채워졌다.
여야의 역겨운 공천 파동 속에서 피해는 애꿎은 여성들이 봤다. 여성 공천 학살이 자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록된 지역구 후보자 935명 가운데 여성은 99명( 10.6%)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16명, 더민주 25명, 국민의당 9명, 정의당 7명 등 여야 4당에서 57명만이 여성을 공천했다. 대한민국이 변하고 국회가 정상화되기 위해 성평등 국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정말 무색케 하는 초라한 공천 성적표다. 여성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남성 지배적 구조 속에서 차별이 낳은 결과다. 하지만 공천 홀대 속에 지역구에서 무려 26명 당선되면서 역대 최다 당선자를 냈다.
이번 총선이 최악인 또 다른 이유는 여야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수준 이하의 행동 때문이다. 거대 여야 정당 누구도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비전도 다짐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읍소하고, 호남에서 지지 못 받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협박하는 꼴불견이 연출됐다. 절박한 마음으로 절박하게 행동 하기는 보다는 판에 박힌 심판론 타령이나 하면서 표를 구하는 낯 뜨거운 모습만 보였다.
선거운동 과정이 이렇게 뒤틀리고 잘못됐는데 무슨 승자가 있겠는가. 솔직히 이런 최악의 총선을 접하고 나니 20대 국회가 걱정된다. 희망이 아니라 어둠이 지배하는 국회가 될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