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마더센터’ 공약
“기존 센터 ‘옥상옥’ 될 것”
더민주, 젠더 의제 충실
“재원 조달 대책 미흡”
국민의당, 정의당도 “고민 빈약”
여야 4당 구체적 실행 전략 ‘별로’
전국이 4·13 총선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여야 4당이 요동치는 표심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건 가운데 유권자들도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워킹맘들의 눈은 각 정당이 내놓은 일·가정 양립 공약에 쏠려 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4당이 의욕적으로 공약을 발표했지만 평가는 싸늘하다. 구태의연한 재탕, 삼탕 공약인 데다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표퓰리즘’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가정 양립문화 정착의 키를 쥐고 있는 기업을 움직일 공약이 빈약한 데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도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1인다역을 하는 워킹맘이 일터에서 겪는 고통을 잘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정책도 여럿이라 ‘선거용 선심성 공약’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만만찮다.
우선 새누리당은 가족친화기업 인증기업 확산과 내실화, 학부모 학교참여 휴가제, 아이돌봄 서비스 확대 공약을 내놨다. 특히 5대 핵심공약에 미래형 보육 플랫폼인 마더센터를 포함시켜 ‘간판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월 통상임금의 40%인 육아휴직 급여를 월 통상임금의 100%로 인상, 남성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5일 이내 3일 유급휴가에서 30일 이내 20일 유급휴가로 확대, 취학자녀돌봄휴가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워킹맘 공약을 내놨다.
국민의당은 산전후휴가를 현행 90일에서 120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산·육아 원스톱 상담센터, 산모전담간호사제 도입도 약속했다. 정의당은 임산부‧영유아 방문건강관리제 도입, 출산 가정에 출산 시 양육에 필요한 종합 물품을 담은 핀란드형 마더박스 지급 등을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디어 수준의 공약도 있고, 제도 안착에 대한 고민이 태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일·가정 양립 정착을 위해 기업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기업을 변화시킬 ‘당근’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보다 중견기업,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3040 여성이 태반이다. 이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단절 없이 직장에서 일하려면 민간기업들이 마지막 자원인 여성 인력의 활용이 국가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 존립을 결정짓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여야는 가족친화기업 인센티브 확대 공약은 내놨지만 정밀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까진 발표하지 못했다.
워킹맘들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려면 근본적으로 기업의 인식 변화나 장시간 근로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대체인력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여성근로자가 ‘1인다역’을 하는 중소기업에선 일·가정 양립문화가 자리잡기 힘들다”며 “육아 서비스 전달체계만 바꿔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공약은 새누리와 더민주, 정의당이 공통적으로 약속했다. 육아휴직 급여 인상도 야3당이 모두 내놨는데 더민주는 100%로, 국민의당은 50%로 인상할 것을 약속했으나 재원이 많이 필요한 정책이라 현실성이 있느냐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마더센터 공약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거세다. “참신한 공약”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이미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내용이다” “이름이 왜 마더센터냐? 여성 돌봄을 전제로 한 마더센터는 부모센터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부터 급조된 공약으로 기존 센터의 ‘옥상옥’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비판이 만만찮다.
한국형 마더센터를 제안한 비영리 협동조합 ‘워커스’ 강수현 대표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마더센터는 관치가 아니라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정부와 코워크(Co-work, 협력)해서 만들어나가는 모델”이라면서 “아직 구체적인 실행안은 없다. 엄마들의 아이디어와 의지가 많이 반영돼야 하는 보육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모두의 거실’을 표방하는 마더센터는 우리나라처럼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했던 1980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독일 복지제도 연구차 마더센터를 탐방한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 돌봄을 강조했던 1980년대와 달리 지금은 가족, 노인, 청년 등 다양한 세대 간 만남을 위한 열린 카페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마더센터는 독일에 400곳쯤 있다. 대다수는 ‘다세대센터’(Mehrgenerationshaus)라는 명칭을 붙여놓고 마더센터 역할을 한다.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부에서 시행 중인 기존 정책을 통합해서 운영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도 높다. 예전에 보육 사업이 여가부로 올 때도 엄청난 갈등이 일어났는데 교육부까지 포함해 팽팽히 맞서 있는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다.
반면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은 “마더센터 아이디어는 고민해볼만하다”며 “미래형 보육 플랫품을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만들려면 기존 유관기관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기능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 심의관은 “국민의당이 내놓은 출산‧육아 원스톱 상담센터는 보건소를 활용하므로 지역사회 단위에서 의미 있는 육아 허브가 될 것”이라며 “산모전담간호사제 도입 공약도 유용해 보인다. 만3세 이전 아이의 육아가 어려운데 경험 많은 전문가가 조언해주면서 임신부와 영아 건강상태를 체크해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는 지역의 구심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민주의 워킹맘 공약은 젠더 의제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재원 마련이 어려운 공약이 여럿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석 교수는 “특히 육아휴직급여를 100%로 인상하는 공약은 수혜자들에게 혜택이 더욱 커질뿐 실제 제도를 이용할 엄두를 못 내는 여성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했다.
출산휴가를 90일에서 120일로 늘리는 정의당과 국민의당 공약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석 교수는 “지금의 출산휴가제는 선진국과 비교해서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 이를 120일로 늘리는 것은 비용 대비 체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의 3대 휴가제 확대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휴가제 확대로 일‧가정 양립을 이룬다는 것은 여성에게 문제를 떠넘겨 또다른 경력단절을 부른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공공 돌봄서비스를 확대해 휴가나 휴직 없이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지, 선진국 제도를 무턱대고 이식하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