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이스 음수야(Joyce Msuya) 세계은행 한국사무소 소장
“한국 정부는 성평등·여성 역량 강화 정책 유지해야”
한국 사회의 ‘성평등’ 성적표는 올해도 초라하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유리 천장’이 가장 단단한 나라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OECD 29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3년 첫 유리 천장 지수 발표 이후 4년 연속 꼴찌다.
“한국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평등과 여성역량 강화’가 국제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어요. 한국도 이러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합니다.” 조이스 음수야 (Joyce Msuya·49) 세계은행(World Bank) 한국사무소 소장은 지난 7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진행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강조했다.
세계은행은 빈곤 퇴치와 공동 번영을 위해 1946년 창설됐다. 185개 회원국을 뒀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양대 국제경제기구로 꼽힌다. 2006년부터 젠더행동계획을 운영하는 등 성평등과 다양성이 경제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주목해 왔다. 음수야 소장도 “교육 받은 여성이 늘었는데도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가 사회 전 분야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자니아 출신인 음수야 소장은 본래 의생명과학 분야 전공자였다. 그는 “실험실을 벗어나 사회를 바꾸고 싶어서“ 세계은행에 합류했고, 지난 19년간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의 민간 부문 개발 전문가로 거듭났다. 2014년 한국 사무소 소장이 된 그는 정부가 최근 개발도상국 소녀들의 자립 지원 계획 등을 발표한 것을 들며 “한국은 더 이상 받는 나라가 아니라 주는 나라다. 한국의 경험을 개도국과 나누고, 또 세계의 경험을 한국으로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낮고, 유리 천장도 단단하다.
지난 2년간 한국 정부의 성평등과 여성 정책을 지켜봤다. 큰 방향에서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04~2014년 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은 꾸준히 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55%만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데 비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국에선 교육 기회의 성차별도 거의 없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출산 휴가 사용 촉진 등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도 개선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내 ‘여성고용률 70%’를 목표로 내건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단,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직원 수 1만2000명 규모의 세계은행이 젠더 통합·다양성 정책을 시행하고 성과를 거두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 5000만 인구의 한국은 어떻겠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국가 경제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성평등은 도덕적으로만 옳은 가치가 아니다. 경제 발전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교육을 받은 여성의 수가 늘었는데도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적다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일하는 여성의 증가는 남녀를 넘어 사회 전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청하는 자세를 갖춘 여성이 더 좋은 리더의 자질을 지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래 세대에 대한 동기 부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역할 모델이니까. 모두 최근 IMF 발표 등 많은 연구로써 증명된 내용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가 더 나은 경제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자명한 이야기다.
-많은 한국 여성들이 업무와 육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으로서 잘 알고 있다. 같은 처지의 여성들끼리 서로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 세계은행엔 여성들 간 비공식 멘토링 그룹이 많다. 나도 아프리카 여성 전문직 종사자들의 모임 등을 통해 업무부터 아이 양육까지 많은 조언과 지지를 얻었다. 한국에 온 이후로는 한국 여성 기업 간부들을 만났다. 그들 덕분에 한국 사정과, 한국에서 고위직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게 어떤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조직 내 고위직에 여성 비율을 높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출산 과정이나 아이가 아플 때 휴가 사용을 망설이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이 일·가정 양립 제도를 잘 활용하고 고위직에도 오를 수 있음을 직접 보면 죄책감을 덜 수 있다.
-남성의 육아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성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전략이다. 남녀가 조화를 이루고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조직의 사례를 널리 알리고 시상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을 통해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한국에 오기 전 중국 베이징에서 근무했다. 이외에도 세계 각지를 돌면서 일한 것으로 안다.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다.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영국, 캐나다, 미국, 중국을 거쳐 이제 한국에 왔다. 한국 사무소 소장 자리에 지원한 유일한 여성이었다. 후회는 없다. 다른 여성들이 나를 보면서 ‘아이도 가진 아프리카 출신 여성이 세계 각지를 누비면서 열심히 일하네, 멋지다!’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3년간 베이징 사무소에서 근무한 경험도 한국에서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유교 문화, 가족 중심의 문화, 어른에 대한 존경, 가족 내 여성의 역할, 예의 바른 사람들 등 한국과 중국 사회는 무척 비슷한 점이 많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데 많은 우려가 든다. 서로의 차이보다, ‘인간’으로서 지니는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당신에게 영감을 준 여성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인 여성이 되거라’, ‘결혼도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 등 중요한 조언을 해 주신 어머니. 그리고 올해 17세가 된 딸. 빈곤한 탄자니아에서 나고 자란 나와 달리,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내 딸은 세계화 시대와 여성의 인권 신장 등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다. 딸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궁리한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취업이 어렵고, 미래가 암울해 보여도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길 바란다. 특히 교육 기회의 측면에서 한국 여성들은 축복받았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에 갈 권리조차 법적으로 금지당한 여성들도 있다.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다른 나라엔 없는 자산을 지닌 셈이다.
세계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용하라. 외국어를 배워라. 경쟁사회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해줄 무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 즐겨라.
삶의 중심을 잡아라. 결국 삶에는 목적이, 힘들 때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에겐 가족이 삶의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