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캐릭터, 스토리와

잘 어울리는 집안 세트

‘집은 곧 그 사람’

우리의 삶도 드라마?

40여 년 동안 숱한 히트작을 만들어 온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의 집을 구경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와 집의 배경이 아주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집은 곧 그 사람’이라는 설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에서는 여러 종류의 집들이 나온다. 80대 부모를 모시고 사는 중년 부부는 전형적인 단독주택에서 산다. 한 사십 년은 되어 보이는 박공 슬라브 집이다. 80년대에 지은 집처럼 보이는 걸 보면 부모가 평생을 열심히 일해서 장만한 집일 것이다. 여기 들어와 사는 막내아들 부부는 노부모와 같은 1층에 살면서 예전 모습과 똑같은 마루에 진중한 벽 장식을 그대로 지킨다. 아이들이 사는 2층과 다락방은 꽤 바뀌었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장남은 홀로 된 며느리와 한 집에 사는데,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한 집으로 보인다. 오년 전 아들이 죽기 전에 리모델링을 했나 보다. 며느리의 세련된 젊은 취향과 스포츠웨어점 사장인 노신사 시아버지가 서로 ‘먼저 팔자 고치라’며 조곤조곤 아껴주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일식집을 운영하는 둘째 아들 부부 집은 아파트라기보다는 빌라로 보인다. 별로 고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꽤 보수적인 성향의 부부일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항상 고래고래 화부터 먼저 내는 남편과 건망 증세가 심각하면서도 항상 느긋하기만 한 연상의 아내는 언제나 부엌 식탁머리에서 아웅다웅한다. 이 집이 변하는 날, 부부 관계도 변하지 않을까?

이 드라마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집이 부잣집이다. 사람을 저만치 떨어뜨려 놓는 거대한 소파와 화려한 바로크 장식에 휑한 잔디밭과 몽실몽실 이발한 나무들이 있는 그 전형적 부잣집 말이다. 손주 며느리 감이 부잣집 외동딸로 나오는 걸 보면 곧 등장할 것도 같다. 혹시 그런 부잣집이 등장하면 김수현 작가가 비판해 마지않는 ‘막장’이 등장할까? 엄청난 부잣집 속에서 해괴망측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으니 말이다.

비슷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기는 하다. 아직도 연애에 설레고 남자 눈길에 흥분하는 안사돈이 사는 집이다. 새 아파트에 핑크빛 무드에 하늘하늘 레이스로 가득 찬 인테리어는 딱 그 여자다운 집이다. 그런가 하면 여기저기 말을 옮기는 재미로 사는 이모할머니는 시장 패션으로 가득한 집에 산다. ‘원룸’은 아닌 다가구 주택 같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이제는 사라진 집도 있다. 마당 있는 한옥이다. 대발이 아버지의 권위주의가 사라져가는 신호일까, 마당을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일까? ‘엄마가 뭐길래’ 드라마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걸까?

정말 집이란 사람들의 캐릭터를 좌우할 만큼 강력한 걸까? 정말로 집의 공간 구성이란 사람들의 관계에 그렇게 영향을 주는 걸까? 정말 집의 장식이란 사람들의 취향뿐 아니라 말투까지도 만들어내는 걸까? 정말 그런 집에 살면 그런 사람이 되는 걸까?

드라마 속의 집은 진짜 집은 아니고 세트다. 그런데 그 세트 속에서 이 시대 우리들이 사는 모습이 그럼직하게 드러난다면, 우리의 삶도 드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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