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서거 71주기
유고시집 발간‚ 공연 등
시인의 삶과 작품 재조명
강하늘 주연 영화 ‘동주’ 개봉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삶을 경계했던 시인 윤동주.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난 그가 지난 2월 16일 서거 71주기를 맞았다. 내년은 윤동주(1917∼1945)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인 윤동주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하는 문화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초 초판본이 복간되고, 2012년 초연한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윤동주의 삶을 최초로 스크린에 옮긴 영화 ‘동주’도 개봉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는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했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자퇴하고, 광명중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일간지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를 발표했고,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사후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된 것은 1948년이다. 최근 원본 디자인을 최대한 살린 초판본 시리즈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출판사 소와다리가 발간한 유고시집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등 주옥같은 시 31편이 수록된 초판본에 유족들이 보관하던 원고를 더해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1955년 발행된 증보판이다.
윤동주의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 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십자가」 등이 대표적인 후기 작품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
2012년 초연과 2013년 재공연을 통해 당시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돌아온다. 3월 20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시인 윤동주의 삶을 통해 격동의 시대, 비극의 시대에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던 순수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윤동주의 시에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창작극만이 끄집어낼 수 있는 감동의 무대를 선사한다.
배경은 일제가 한민족을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1938년이다.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벗이자 동지인 사촌 송몽규와 함께 경성으로 온 어린 청년 윤동주가 등장한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우리 민족 문화의 소중함을 배워가던 중 외솔 선생이 일본 순사에게 잡혀간다. 스승과 친구들, 우리말과 우리글, 자신의 이름과 종교 등 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참담한 민족의 현실에 몸부림치던 윤동주는 절필과 시 쓰기를 반복하며 괴로워한다.
동주
시보다 더 찬란했던 윤동주의 청춘을 대한민국 최초로 스크린에서 만난다. 17일 개봉한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TV나 영화에서 본 적이 없었던 이준익 감독의 의문에서 출발했다. ‘프랑스 영화처럼’ ‘조류인간’ 등을 연출한 신연식 감독이 각본을 맡으면서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 나갔다. 무언가 이루고 싶었지만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젊은이, 청년 윤동주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었던 두 사람은 그의 삶을 따라가며 청년 ‘동주’의 작품들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주목했다.
‘동주’는 흑백의 영상으로 제작됐다. 이 감독은 흑백 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독립 운동가의 모습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영화 ‘쎄씨봉’ ‘스물’부터 드라마 ‘미생’ ‘상속자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강하늘이 ‘동주’ 역을 맡았다. 그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점점 수척해지는 동주를 표현하고자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또 일본군에게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리는 장면에서 실제로 삭발을 자처한 것은 물론, 극 중 시를 쓰는 모든 장면에서도 본인이 직접 글씨를 썼다.
영화 ‘파수꾼’ ‘오피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온 박정민은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며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몽규’로 변신했다. 그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을 앞두고는 이틀 전부터 밥과 물을 전혀 먹지 않으며 기력이 쇠해진 몽규로 완벽히 몰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