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걸 하나의 카드로 통합한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주민

등록등초본이나 인감증명을 떼려고 동사무소를 찾을 필요도 없다.

주변에 설치된 무인 발급기를 이용하면 간단하다. 은행이나 병원에

서도 이 카드 한 장이면 해결된다. 교통위반 스티커를 떼느라 시간

낭비할 일도 없다. 가히 ‘꿈의 혁명’이라 하겠다.”

96년 정부에서 주민전자카드 발급안을 발표했을 때 찬반논쟁이 격

렬했다. 낙관론자들은 이를 ‘꿈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1월 17일 국회본회의에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돼 주민전자카

드가 현실화될 기회를 맞게 되자 이번에는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한

창이다. ‘통합전자주민카드 시행반대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시

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전자카드가 ‘프라이버시 침

해’ 우려가 있다면서 ‘전자주민카드 발급을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할 전망이다.

국회의결을 통과했으니 반대의사를 표현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전자주민카드가 진행되어온 일정을 돌아보면 ‘정보화’의

실익이 무엇일까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전자주민등록증이란 것은 신용카드 크기의 플라스틱 카드로 앞면에

는 사진,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함께 손톱만한 IC(직접회로)가

내장돼 있다. 이 IC에 주민등록증, 운전면허, 의료보험, 국민연금, 인

감, 지문 등 7가지 정보가 담겨 있다. 또 뒷면에는 인감도장과 함께

의료보험의 진료지역과 유효기간, 운전면허의 종류와 유효기간 등

기본사항이 기재된다.

전자주민등록증은 정부의 정보화촉진계획의 일환이다. 정부는 2010

년까지 국가사회 전부문에서 세계일류의 정보화를 달성하겠다는 목

표를 세우고 지난해 6월 정보화 촉진계획을 확정했다.

정보화 촉진계획의 중점과제에는 전자정부 구현, 교육정보화 기반구

축, 의료서비스 고도화 등 10가지 사업이 포함된다.

전자주민등록카드는 전자정부 구현과 관련된 시책이다. 국민들의 정

보를 자그마한 카드로 관리할 수 있는 막강한 정보통제력을 가진 정

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정부’이다. 정부는 전자정부의 구현을

“작지만 효율적인 전자정부”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나, 실상 그

전자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으로 친다면 괴물과도 같은 거

대한 정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카드 한 장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가공할 만한 일이다. 학자들의 지적대로 사회적 유

용성 못지않게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또 기록의 오기, 분실 등등 우리 생활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전자카드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는데 전자카드

는 이 작은 불운 또는 실수의 파장을 ‘네트워크’로 확산시켜 치명

적인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우려 때문에 전자

카드 도입을 미루어왔다고 한다.

한 연구소에서 정보화 지수라는 걸 조사한 적이 있다. 남자를 100

으로 했을 때 여자의 정보화지수는 32로 나타났다. 전자카드를 발급

하는 정부의 정보화 지수와 전자카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

인 국민간의 정보화 지수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게 될 것이다. 또 국

민 중에서도 학력간 지역간 계층간 성별 차이도 상당하다.

정보화 사회의 토대가 민주주의라면 어느 한 분야가 일류화 되는 것

보다 많은 사람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김효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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