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준 왜곡’ 바비 인형, 다양한 체형 시리즈 첫 출시
페미니스트들 “미모 강조‧젠더 고정관념 등 여전해” 비판
‘바비 인형처럼 긴 다리’, ‘바비 인형도 울고 갈 늘씬한 몸매’... 비현실적인 체형 탓에 ‘아름다움의 기준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비 인형이 변신에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미모를 강조하고,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비 인형 제조사이자 세계적인 완구회사 마텔은 앞으로 다양한 체형을 지닌 바비를 선보이겠다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배가 조금 나온 ‘통통한’ 바비, 키가 큰 바비와 작은 바비 인형이 오는 3월부터 판매된다. 바비 인형 탄생 57년 만에 ‘키 크고 늘씬한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것이다. 피부색도 7종, 눈 색깔도 22종, 머리 스타일도 24종으로 출시됐다.
이는 마텔이 지난 2년간 페미니스트 컨설턴트 등을 기용해 비밀리에 추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바비 인형을 갖고 노는 아이와 부모가 아름다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바비들은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을 더 잘 투영하고 있지요.” 에블린 마조코 마텔 상무의 소개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에 대해 다양성을 강조하는 시대의 변화가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체형 시리즈는 이번에 처음으로 출시됐지만, 이전에도 마텔은 다양한 직업과 피부색을 지닌 바비를 선보이며 성 역할과 인종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16년 올해의 직업군에는 전형적인 남성 직업으로 여겨지던 ‘게임 개발자’가 추가돼 화제를 모았다.
이번 변화는 바비 인형 판매량 감소에 대한 타개책이기도 하다. 바비 인형 판매량은 지난 2년간 분기마다 15%가량 떨어졌고, 겨울왕국의 엘사 인형과 레고 시리즈에 시장 선두 자리를 뺏겼다. 새 바비 인형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올해는 실적 반등에 성공할 것이라고 점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수십 년간 바비 인형의 변화를 촉구해 온 페미니스트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미국 메레디스 칼리지 사회학과의 크리스 매컴버 교수는 지난달 28일 AP통신을 통해 “바비나 다른 패션 인형들이 여성의 외모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물론 모든 체형을 감안하는 것도 중요하고, 모든 피부색을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모가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끝없이 전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이본느 로버츠도 “바비 인형의 진짜 문제는 그대로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가디언 지에 기고한 “바비도 이제 57세인데, 언제 진짜 어른이 되려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변함없이 예쁜 얼굴 △분홍색이나 밝은 파스텔톤 색상의 복장, 장신구 등 고수 △젠더 고정관념 유지 등이 바비인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대중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유동적인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양성이 아닌’ 유니섹스 복장과 도구를 갖춘 바비를 선보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