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 중에서 술이 그 탓으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다. 직장 성희롱 사건은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술이 결부되면, 성희롱은 ‘술만 아니면 괜찮은 사람’이 저지른 안타까운 실수로 둔갑한다. 잘못은 가해자가 아니라 술이 한 것 같기까지 하다.

행위에 대한 책임은 피해자에게만 요구된다. 왜 그 시각까지 술자리에 따라다녔냐는 식이다. 가해자에게 왜 그 정도로 많이 마셨냐고는 묻지 않는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술을 금지하거나 그 양을 제한하는 것이 답이지만 그런 조치가 취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요컨대 술탓은 정말로 성희롱의 원인을 이해할 수도, 이해할 의지도 없는 주장인 것이다.

직장 성희롱은 잘못된 성관념 때문에 일어난다. 여성이 보통 피해자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 성관념이 여성차별적인 데다 그것을 관철시킬 권력을 가진 자리에 주로 남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직장 자체가 남성들이 다수인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 성희롱이 술 때문은 아니지만, 술문화를 문제 삼을 필요는 있다. 우리의 술문화는 과음에 대해 매우 허용적일 뿐 아니라 술을 계속 권하는 것을 무슨 미덕인 양 여긴다. 직장회식이 술 중심적인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남성들이 많은 직장에서라면 회식은 술판이 되곤 하고 술판은 보통 과음의 상태까지 가야 끝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술문화가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보통 상사의 주량과 기호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알아서 적당히 마시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과음을 피하려고 술을 몰래 다른 컵에 뱉었더니 상사가 그걸 알아채고는 기어이 그 술을 다 마시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쯤되면 그 회식은 하나의 괴롭힘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불안정하거나 직위가 낮다면 이런 강요를 거부하기 더 어렵다. 직장 성희롱이 일어나기 전에 술자리와 과음에 대한 강요가 있는 것이다. 성희롱은 권력관계 안에서 흔히 일어나기 때문에 상사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 술자리에 관해 책임을 물으려면, 피해자에게 “왜?”라고 물을 게 아니라, 가해자인 상사에게 왜 그 시각까지 술자리를 강요하며 마셨는지 그 의도를 묻는 게 맞다.

회식 자리가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의 직장문화에서 획일주의와 권위주의가 지나치게 강해서 업무 외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풍조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자장면을 좋아하는 상사 때문에 부서 전원이 거의 매일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런 세태이니 술도 자장면처럼 상사가 원하면 함께 마셔야 하는 걸로 여겨진다. 이런 분위기를 따르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잘 못 한다”는 소릴 듣는다. 이러한 직장 문화는 남성들의 군대문화를 닮아 있다. 소위 “까라면 깐다”는 군대문화가 직장의 일상도, 회식 자리도 지배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의사가 억압되는 직장 분위기에서, 상사의 더듬는 손을 단호하게 저지시킬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일터에서의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성희롱에서 희롱(harassment)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원래 괴롭힘이라는 뜻이다. 직장 문화의 획일주의와 권위주의가 성희롱과 같은 일터 괴롭힘의 온상이다. 이제는 좀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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