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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의 이브는 금기된 욕망을 추구하다 인류에 씻지 못할 죄를 남

긴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의 여성들도 이브의 죄에서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는 것일까. '이브의 모든 것'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여 금기된 욕망을

추구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가난한 고아 허영미와 안정된 집안의 진선미.

이브가 세상에 죄악을 가져온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진다고 보면, 이

브는 허영미인가보다.

지금까지 천사와 악녀가 등장하는 많은 드라마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여

성상들을 아주 지겹도록 보아왔다. 가난하지만 착한 콩쥐와 부잣집에서

태어나 이기적으로 그려지는 팥쥐의 대결구도는 드라마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남성중심적인 전략이다. 순종적이고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는 착

한 여자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왕자를 얻게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

그러나 적극적이며 능력 있는 여성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결말.

그녀는 가정과 남자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위협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단순한 여성상이 '이브의 모든 것'에는 이브와 마리아로 구현

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계층과 신분이 엇갈려 있다는 것이다. 악녀인

허영미는 가진 것 없는 고아로, 천사인 진선미는 사랑을 듬뿍 받고 좋은

집에서 자란 화초로 설정되어 있다(편부슬하지만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

는 이웃이 있다). 캐릭터의 전형성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 구도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위험한 이데올로기와 접하게 된다. 계층과 성에 대

한 편견이 얽혀 있는 것 말이다.

여자 주인공인 허영미는 진선미가 좋아하는 남자까지 빼앗고 진선미의

일을 방해하는 등 끊임없이 시기하고 괴롭힌다. 이런 허영미의 실체를

진선미만이 알고 있어 항상 당하기만 한다. 이들은 뉴스진행자인 앵커가

되기 위해 같은 방송국에 입사해 경쟁한다.

우리 나라에서 여성앵커가 된다는 것은 지성도 있어야 하지만 미모가 겸

비되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결말은 캐릭터의 이름을 통해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 ‘美’가 위선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뭉친 허영미보다는 진

선미라는 것. 이는 마치 방송은 가식이 아니라는 걸 웅변하려는 듯이 보

인다. 결국에는 이름처럼 진선미가 승리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허영미와 진선미는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한다. 방송국

에 입사 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도 모른 채 하는 허영미에게는 처벌이

따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허영미에게 빼앗긴 진선미는 자상

한데다가 방송사 이사이기도 한 남자(형철)가 옆에 있으니 오히려 더 큰

보상을 받는 셈이다. 앞으로 허영미는 진선미와 형철의 관계를 이간질하

고 또다시 형철을 빼앗으려 할 지도 모른다.

사실 허영미는 자신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와 삐

딱한 시선은 변화를 억압하고 현재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또한 진선미와 허영미를 비롯한 수많은 천사와 악녀, 마리

아와 이브의 극단적인 갈등의 부각 속에는 여성들끼리 서로 미워하게 만

들면서 여성간의 연대를 약화시키고 해체하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신분상승을 꿈꾸는 허영미. 그러나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고 최고가 되고자 하는 이브의 욕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

을 것이다. 그 욕망은 계급 상승의 욕망이며 남성중심적인 공적 사회로

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악녀로 묘사되는 허영미는 낮은 계층에 대한 편

견이 묻어있으며, 소득이 곧 신분을 말해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이동은 불가능함을 뜻하고 있다.

그리고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허

영미의 노력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에 대한 편견이 내재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양지/21세기 여성미디어 네트워크 매체비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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