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는 계속된다
‘디아스포라’는 계속된다
  •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
  • 승인 2015.12.11 09:28
  • 수정 2017-10-23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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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후 한국 이주 꿈꾸는 여성들

어려운 키르기스스탄 현실 속 새 돌파구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맨 오른쪽)가 고려인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 대상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경애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맨 오른쪽)가 고려인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 대상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경애

서에스터(65)씨의 삶은 러시아의 연해주, 북한, 다시 연해주, 키르기스스탄으로, 광활한 대륙에 걸쳐 긴 거리를 이주하면서 펼쳐졌다. 서에스터씨의 외조부모와 어머니는 연해주의 캄차카에 살았는데, 1937년 추방당해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이 되자,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캄차카에 가보고 싶어 방문했다가 북한에서 일하기 위해 캄차카에 온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서 정착했고 자신을 낳았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어머니는 한국말을 잘해 러시아어 통역사로 일하다가 그녀가 8살 때 조부모가 살고 있던 북한의 흥남으로 이주했다. 다시 함흥으로 이사해 5년 동안 살았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어머니가 결핵에 걸린 이웃을 돌봐주다가, 서에스터씨도 결핵에 걸리게 됐다. 러시아 여권을 소지한 어머니는 북한 국적을 거부하고 자식 두 명을 자신의 여권에 올리고 자식들이 아파 급하게 출국해야 한다고 우겨 아버지 몰래 베이징을 통해 하바롭스크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북한을 서너 차례 방문해 아버지를 데리고 나오려고 했으나 불가능하자, 북한에서 온 건축기술자로 계약 기간이 지났으나 돌아가지 않고 도망 나온 남자와 재혼했다.

서에스터씨는 결핵병원 요양원에서 학교를 다녔고, 학교 졸업 후 러시아 남성과 결혼해 하바롭스크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어린 시절 잃어버린 자신의 동생이 카자흐스탄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들과 가까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 기후가 좋고 인심이 후한 키르기스스탄이 살기 좋다고 해서 하바롭스크의 좋은 집과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바꿔 1984년 이사했다. 자신은 1986년 어머니에게 놀러왔다가 시어머니를 간병하는 러시아인 남편을 남겨두고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서에스터씨는 그 후 일하던 직장에서 포상휴가로 유럽 여행을 보내줬는데 그리스가 좋아 혼자 일행을 버리고 잠적해 버릴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면서, 한국을 샅샅이 보고 싶어 한다. 이주에 대한 피로감보다 여러 곳에 이주해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그녀는 아직도 새로운 이주를 꿈꾸고 있었다.

고려인들은 소련 붕괴 후 키르기스가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다시 ‘디아스포라’를 꿈꾸고 있다. 고려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만 구사해 러시아로의 재이주를 하나의 대안으로 둔다. 또 다른 대안은 새롭게 떠오른 ‘역사적 조국’ 한국으로의 이주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고려인들은 한국을 ‘제1고국’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취업, 사업, 유학, 친지 방문 등의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다. 이번에 인터뷰한 고려인 여성들의 남편과 자식 등을 비롯한 주변 친인척도 이미 한국에 여러 형태로 진출하고 있었다.

고려인협회에서 일하면서 국제한인간호재단(GKNF)이 시행하고 있는 고려인 검진사업의 검진자 선정위원인 원나리샤(56)씨는 엔지니어인 남편이 부산에서 건축 일을 10년째 하는데, 남편이 키르기스에 돌아와도 일자리가 없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자신도 한국으로 가라는 주변 권유를 받고 있다고 한다. 주안나(76)씨의 작은 딸은 간호사인데 사위와 함께 한국에 가서 호텔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권율라(36)씨는 한국 물품을 수입 판매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 잡았고, 한국말을 잘하는 장율라(36)씨는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한국어교육원의 직원과 초급반 교사로 일했다. 천나리샤(65)씨의 아들은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 유학한 후 한국에서 진출한 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시행 중인 청소년 초청 프로그램으로 이미 많은 수의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유학했다. 임빅토리아(49)씨의 아들은 1992년 러시아 대학생 100명 초청 방문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와 보고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대학 수석 졸업 후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장율라씨는 한국말로 인터뷰했는데, 그녀는 키르기스의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국제교류재단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한국 방문을 통해 이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 병원에서 의료연수를 한 의사 김일리아나(31)씨는 한국에 대한 생각이 한국 가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한국 병원은 시설이 좋고, 특히 의사들은 열심히 일하며 좋은 대우를 받고,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고려인 여성들은 자신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나라인 키르기스가 자신의 나라이지만 고려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고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그 아들이 러시아계 여성과 결혼해 태어난 손자까지도 스스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 고려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고 한다. “소련 붕괴 이후 고려인이라는 흔적이 없어지는 것 같았고 여기도 저기도 속해 있지 못해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던 차에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은 다시 이들에게 어려운 키르기스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디아스포라를 꿈꾸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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